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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중독 코스프레

왓더 홀라크라시?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8. 1. 1. 01:25

홀라크라시
국내도서
저자 : 브라이언 J. 로버트슨(Brian J. Robertson ) / 홍승현역
출판 : 흐름출판 2017.05.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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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라크라시 레볼루션
연차에 비해 제법 많은 조직을 거치면서 내재화된 게 하나 있다면 ‘어느 곳이나 다 똑같다’라는 냉소 어린 달관이다. ‘지랄 보존 법칙’에 입각, 어딜 가나 상상 초월할 광인 한둘은 꼭 있고, 무능한 경영진이 조직 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허다하다. 사장이란 무릇 최소 금전으로 최대 노동력을 쥐어짜는 ‘악덕 자본가,’ 그러니 피고용인으로선 받는 만큼만 일하게 되는 게 조직 생리다. 사장과 다른 곳을 바라보는 반골은 열이면 열, 못 견디고 자진 퇴사하거나 강제 축출당하게 된다. 조직이 곧 사장. 사장이 건재하는 한 조직은 절대 안 바뀐다. 사장 마인드 절대 안 바뀐다. 그러니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는 걸 신성 교리로 여기며 꾸역꾸역 직장 생활을 연명해왔다. 

그런데 홀라크라시는 내 마음 속 깊숙이 불신/냉소/무기력으로 강고하게 세워진 ‘절’을 허물고 홀라크라시 양식의 설계 도면을 따라 지어진 혁신 성전의 청사진을 제시한다. 타성과 오만에 절어있던 땡중이 사라진 자리에는 홀라크라시를 안수 받은 신자로 채워진다. 지금껏 조직을 관장하던 전통적 계층 구조와 경영 패러다임은 과감히 허물어야 한다. 대신 ‘거버넌스’와 ‘오퍼레이션’이 상호교직하는 운영 체제를 탑재, 사람 대신 역할을 조직화해서 긴장을 처리한다. . 홀라크라시는 조직을 하나의 생명체로 상정한다. 홀라크라시 산하 전 구성원은 명확한 자율성을 가지고 조직의 목적을 실현하고 조직 생명을 연장시키고자 기껍게 복무하는 ‘세포’인 것이다. 자기조직화된 독립체들이 끊임없이 조직의 안위를 돌보며 진보를 북돋는 ‘진화형 경영 네트워크, ’홀라크라시는 혁명이다. 


홀라크라시 패러독스 

스타 리더가 독식하는 강력한 중앙 집권 체제의 한계를 지적하는 반론과 이를 방증하는 사례는 심심찮게 목도할 수 있다. 홀라크라시가 표방하는 탈중앙집권화된 분산형 권력은 최근 화두로 떠오른 ‘블록체인’과 흡사하다. 권력과 부의 집중을 분배로 풀어보자는 사회 경향을 확인할 수 있는 지점이다. 이러한 방향성에는 적극 동의, 앞으로 이러한 움직임이 계속 이어져야 마땅하다. 홀라크라시의 비전은 나무랄 데 없이 창대하고 전복적이지만 아직까지는 선뜻 공감하기 힘든 탁상행정처럼 들리는 건 왜일까? 저자는 홀라크라시가 허울 좋은 이론이 아니라 마음만 먹는다면 지금 당장 얼마든지 조직에서 실천 가능한 시스템이라고 역설을 거듭한다. 구체적인 사례와 예제들을 내세우며 논지 강화를 위해 부단히 애쓰지만 이 책을 덮는 마지막까지 이상주의자의 한낱 흰소리에 지나지 않는다는 못미더움을 감출 수 없었다. 

미국 온라인 리테일러 자포스는 홀라크라시 현장 도입의 대표적인 성공 사례로 꼽힌다. 그러나 홀라크라시가 대규모 조직에도 얼마든지 적용 가능한 범용 경영툴이라고 입증하기엔 표본이 너무 적다. 되려 홀라크라시로 조직 쇄신에 성공한 조직이 극히 예외적인 특수 경우로 보여진다. 2015년에 본 책이 미국에서 출간되었고 홀라크라시가 대중에 삼투되어 실현되기까지 시간이 걸릴 것을 감안해도 아직까지 국내 성공 사례가 전무하다. 더군다나 서구권에 비해 위계 질서가 강한 문화 차이와 토론 문화가 활성화되지 않은 국내 실정을 떠올리면 ‘홀라크라시 혁신’은 실상 요원하다. 기성 조직 문화의 첨병이라 여겨지는 국내 대기업에서 홀라크라시를 전격 장착, 전면적인 체질 개선을 이루었다는 레퍼런스가 쌓이기 전까지 나에게 홀라크라시의 영험이란 신기루에 불과하다. 

홀라크라시의 최대 맹점은 인간이 거세된, 반인륜(?) 접근법이다. 홀라크라시는 공학적으로 완벽하지만 조직 구성원의 개별성은 철저히 묵살된다. 말인즉슨, 홀라크라시 시스템은 인간을 일종의 표준화된 개체라고 전제한다. 예컨대 문제해결력이 뛰어난 사람에게는 유리할지 몰라도 그렇지 않은 사람은 도태되기 십상이다. 누군가는 자아 실현을 최고 가치로 삼을지 모르지만 또 다른 누군가는 그저 돈벌이 수단에 지나지 않을지 모른다. 인간은 저마다 역량과 추구 가치만 다른 게 아니라 감정선도 다르다. 홀라크라시 프로세스에는 인간의 감정이 배제된다. 홀라크라시가 모두에게 동일 수준의 자율성과 동기부여를 심는 게 가능하다면 그건 더 이상 경영 이론이 아니라 사이비 종교일 것이다. 홀라크라시에 따르면 모두가 한마음 한 뜻으로 오로지 조직의 ‘긴장 처리’만을 위해 전력투구하는 로봇이다. 주지하다시피 인간은 규정하기 어려운 미묘하고 복잡다단한 동물이며, 조직은 이러한 인간으로 구성된 집합이다. 그런데 홀라크라시에는 정작 인간 개별성과 관계에 대한 통찰은 부재하다. 

인간은 딱 경험의 크기만큼 사고한다. 홀라크라시는 내가 겪어온 ‘회사’라는 지독한(?) 조직의 고질적인 병폐를 타파시킬 혁명이다. 이론상으로라면 나 같은 ‘조직 불신론자’야말로 홀라크라시를 가장 격렬히 환영해야 할 터인데 도리어 홀라크라시의 실효성을 불신하고 부정하는 경험의 역설. 내 일천한 경험치대로 홀라크라시가 그저 유행 경영 사조에 지나지 않는 이상주의자의 망상일지, 아니면 구태 경영 시스템의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이룩하고 생태계를 정화시킬 ‘어떤 혁신’일지는 오직 시간만이 답해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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