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중독 코스프레

우리 몸을 둘러싼 '신화' 들여다보기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7. 8. 20. 23:24

면역에 관하여
국내도서
저자 : 율라 비스(Eula Biss) / 김명남역
출판 : 열린책들 2016.11.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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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 근래 몰입력을 불살라 완독, 최애하는 웹툰이 생겼으니

그거슨 바로 웹툰사에 길이 회자될 갓동건의 <유미의 세포>.

<달콤한 인생> 때 이미 인간 심리(특히 여자 사람)를 꿰뚫어 만화로 풀어내는 신통함과 

일상의 극도로 지질하고도 솔직한 순간들을 적시에 포착하는 위트꾼임을 알아봤던 이동건 작가.

<유미의 세포들>로 웹투니스트의 정점을 찍었다.

이 사람 정녕 천재 맞고 그 안에 여자 있다.

맹랑한 상상력에 한번 놀라고 탄탄한 플롯에 또 한번 놀란다.

<유미의 세포들>은 앞으로 삼시세끼 따박따박 챙겨먹듯 

매일같이 웹툰으로 유머력을 증강하리라 마음 먹게 된 결정적 동인이 되었다.


<유미의 세포들>의 아이디어는 우리가 세포로 이루어진 일종의 '세포 총화'라는 은유에서 출발한다. 

예컨대 우리가 허기짐을 느끼는 건 '출출 세포'가, 불현듯 센치해지는 건 '감성 세포'가

긴축 재정 모드에 돌입하는 건 '자린고비 세포'가 본심을 숨기고 ~한 척 하는 건 '척척 세포'가 발동하기 때문이다.

주인공 유미가 내리는 모든 선택의 배후에는 세포들이 있는 것이다!

유미 안에 하나의 마을이 있고 그 속에 기거하는 '유미의 세포들'이 옥신각신 

살뜰히도 유미를 보살피며 조종(?)한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과도 대략 비슷한 모티프다. 

은유 × (   ) = 우리 몸

이렇듯 우리는 우리 몸을 다양한 무늬의 은유로 상상한다.

흔히 우리는 우리 몸을 하나의 무결한 성전으로 간주, 

질병을 야기하는 각종 침입자들에 맞서 전면전을 벌이는 장소로 상정한다.

이때 면역은 우리 몸을 방어하는 철통 수비벽쯤 될 것이다.

군사적 방어의 은유가 투영된 면역계 모습이다.

한편 바이러스는 종종 마치 좀비, 시체 도둑, 뱀파이어 등의 악의 축으로 환원된다. 

한술 더 떠 면역계라는 보건 개념을 설명하기 위해선

교향곡, 태양계, 영구 운동 기계, 어머니의 쉼 없는 경계 태세 등 기상천외한 은유가 동원된다. 


보건 역사는 당대 사회문화적 맥락의 기저를 파악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기도 하다.

19세기 말 영국에서 백신 접종은 몸의 자결권 확보 수준을 가늠하는 척도였다.

1853년 영국이 무료 백신 접종을 의무화를 실시했을 때 

일부 노동 계층은 자신들의 자유가 침해될 것을 우려하며 이에 저항했다. 

또 다른 예로 공중 보건 조치는 교육 수준이 낮은 저소득층을 위한 대책이라는 계급성을 지닌다.


보건을 대하는 태도에 자본주의, 가부장주의, 소비자 중심주의 같은 이데올로기가 반영됨은 물론이다. 

건강은 라이프 스타일에 대한 보상이라는 생각, 

생활 방식은 그 자체가 다양한 종류의 면역이라는 생각이 숨어 있다. (260)

에이즈만 해도 그러하다. 

우리는 사실 여부와 상관없이 에이즈 감염이 동성애, 난잡한 성생활 약물 중독으로 

생을 방기한 응분의 벌이라고 암묵적으로 심판한다.

경계 타파

세상을 이해하는 가장 편하고 쉬운 방법은 흑백으로 만물을 나누는 것이다.

보건 기제도 이분법으로 도식하면 얘기는 단순간단해진다.

내 몸은 선, 내 몸을 둘러싼 환경은 악이다. 

병균도 우리의 건강을 위협하는 절대 악이 아니다.

역설적으로 다양한 병균과 세균과 맞닥뜨리는 역학 속에서 건강한 면역계를 구축할 수 있다. 


장기 면역을 발달시키는 후천 면역계는 바이러스의 DNA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니 

과학 저술가 칼 짐머 말마따나 인간과 바이러스 사이에는 실로 <내 편 네 편이 없다>. (68) 

수전 손택도 <은유로서의 질병> 서문에서 <사람들은 모두 건강의 왕국과 질병의 왕국, 이 두 왕국의 시민권을 갖고 태어나는 법. 아무리 좋은 쪽의 여권만을 사용하고 싶어도 결국 우리는 한 명 한 명 차례대로, 우리가 다른 영역의 시민이기도 하다는 점을 곧 깨달을 수 밖에 없다>며 개념 정립의 유동성을 강조했다. 


자연도 절대 선은 아니다.

우린 nature/natural이란 단어에 과도한 신성함을 부여하는 경향이 있다.

자연은 마치 의학적 맥락에서 순수함, 안전함, 무해함의 등가 개념처럼 떠받들여진다.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자 환경보호자 레이철 카슨은 저서 <침묵의 봄>에서 

살충제 DDT의 치명성을 폭로했고 DDT의 범지구적 퇴출에 앞장섰다. 

덕분에 얼마간 자연 오염은 막았을지 모르지만 

DDT를 모기 퇴치제로 쓰기 않는 일부 빈곤 국가에선 말라리아가 재창궐했고 

그로 인한 사망자가 발생하는 불상사까진 막지 못했다. 

백신은 인간과 자연 사이의 중간 영역에 속한 물질인데 

선과 악, 인간과 비인간, 자연과 부자연, 고대와 현대라는 이분법적 신념을 고수했을 때 

도리어 인간 생명이 위태로워지는 아이러니가 발생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상상된 자율성

우리는 스스로 우리 몸의 통제권을 전적으로 소유하며 

철저히 독립된 개체로 인식하지만 이는 한낱 환상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 몸이 건강은 늘 남들이 내리는 선택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고 있다. 

예컨대 백신의 효과는 한 개인의 몸에 국한되지 않는다.

제 아무리 온갖 백신 접종을 챙겨 맞는들 백신 접종을 하지 않은 누군가로 인해

질병에 걸리는 확률로부터 안전할 수 없다.


즉, 면역은 사적인 계좌인 동시에 공동의 신탁이다. 

집단 면역에 의지하는 사람은 누구나 이웃들에게 건강을 빚지고 있는 셈이다. (46) 

내 몸이 오염과 침해에 취약할 뿐 아니라 타인을 전염시킬 잠재력이 있는 

위협적인 존재이자 별 특별할 게 없는 존재임을 자각하는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 

어느 면역학자의 말마따나 인간이란 '미생물의 운송 수단'에 지나지 않는 하찮은 생명체일지 모른다. 


저자는 오염에 대한 두려움의 우스꽝스러움도 지적한다.

우리는 바이러스나 백신 접종으로 인한 위험성에 과민하게 반응한다. 

그로 인한 질병 사망률보다 교통 사고로 죽을 확률이 절대적으로 더 높지만 대개 운전을 두려워하진 않는다. 

위험 인식이란 게 '계량 가능한 위험'에 관한 문제가 아니라 '측정 불가능한 두려움'에 기인하는 까닭이다.

사소한 위험에는 편집증적으로 대처하면서 정작 중대한 위협은 간과하는 우스꽝스러움.

미지의 영역을 대하는 인간의 나약하고도 부조리한 단면이다.


그 연장선 상에서 다른 사례를 들자면

항미생물제인 트리클로산의 위해성에 대한 공식적인 연구 결과는 없지만

장기간 지속적으로 노출되었을 경우 인체에 미치는 영향은 아직 아무도 알 수 없다. 

그럼에도 트리클로산의 위험성을 촉구하는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우리는 트리클로산을 사용함으로써 실제 살균 효과의 덕을 보는 게 아니라

몸으로부터 세균 침입을 예방한다는 믿음을 사는 것이다. 

개인적 순수함을 추구함으로써 자기 건강을 스스로 온전히 통제할 수 있다는 허상

신체적 순수함에 대한 열정은 인종 학살을 초래했던 우생학의 단초였다. 

우리 몸 은유 개화하기

저자는 볼테르의 <캉디드>에 등장한 물리적 차원의 '정원' 개념을 차용, 우리의 사회적 몸까지 팽창시킨다. 

저자가 이상적으로 그리는 우리 몸의 은유란 '정원 속의 정원'이다. 

좋고 나쁜  균류, 바이러스, 세균이 공존하는 다양성이 존중되고 

무경계로 인위적인 손길이 닿지 않은 야생의 사태. 

서로의 환경, 공유된 공간, 우리가 함께 가꾸는 공동체로서의 정원 말이다.


나는 자타가 공인하는 물티슈 성애자다. 세균포비아 보균자라고 하는 편이 더 옳겠다.

유독 손에 대한 청결만큼은 강박적이라 집이든 회사든 손 닿는 모든 곳에 물티슈를 전면 비치, 

외출할 때도 보조 가방을 부러 챙기지 않으면 마음이 불안해진다. 

대중교통 수단만 이용하다 보니 생긴 공중보건불신 편집증인데 

물티슈 따위로 세균 박멸될 리 없다는 걸 잘 알면서도 곧 죽어도 놓을 수 없는 '라이너스의 담요' 같은 거다.


이 책의 가치는 작게는 물티슈의 효능을 신봉하는 나의 불안정한(?) 정신 상태를 진단하고

우리 몸과 관련해서 그동안 무비판적으로 답습했던 고착화된 은유 더미를 파헤쳐서 

문화인류학적 통찰을 제공, 더 나아가 공동체 안에서의 개인 연대 의식을 고취하는 데 있다.

수잔 손택의 <은유로서의 질병>의 라이트 버전이랄까.

물론 손택 책을 읽어보지도 않은 주제에 씨부리는 허세다만,

이참에 '보건' 테마 릴레이로 <은유로서의 질병>에 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