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중독 코스프레
"당신은 통계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 ♪"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7. 8. 20. 2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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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대체 조지 박스가 누구야?
그게 정말 궁금해."
나는 몇 대째 이어지는 독실한 개신교 집안에서 태어나 불치의 이단으로 살아가는 후천성 무신론자다. 그래서 애당초 절대자가 개인을 위해 예비한 ‘플랜’이란 걸 믿지 않는다. 인간이란 우주의 때(?)만도 못한 우연한 생명체로 출현, 우연을 인과의 툴로 해석해가며 필연을 창조하는 종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러다 보니 나로선, ‘어쩌다 보니’만큼 지구 만물과 자연 현상을 명징하게 압축하는 단어도 없다. 내가 세상에 태어나 이렇게 생겨먹은 것도 ‘어쩌다 보니’ 그런 거지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다. 모든 현상도 ‘어쩌다 보니’가 축적되어 일련의 ‘어쩌다 보니’스러운 결과로 이어질 뿐이다. 조지 박스가 통계학자가 된 것도 대단히 ‘어쩌다 보니’해 보이지 않을 수 없는데, 불후의 통계학자가 되어 그가 남긴 족적만큼은 결코 그렇지 않다.
상아탑에 갇혀 고담준론 따먹기하는 학문만큼 구역질 나고 위험천만한 것도 없다. 모름지기 학문이란 우리가 숨 쉬는 ‘지금 여기’를 밀착 호출하는 실천성으로 인류를 찰찰하게 보필(?)해야 마땅하다. 故 신영복 선생은 우리의 삶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가슴에서 발까지 이어지는 여행'에 비유했다. 나에게만 머무는 게 아니라 행동으로 옮겨지고 관계로 뻗어가는 배움을 가장 도달하기 어려운 최고 경지로 보았다. 영국의 통계학자 조지 박스, 그 이름은 금시초문이었습니다만, 글로 만난 그의 모습은 영락없이 신영복 선생이 생전 설파하셨던 배움의 가치를 가장 모범적으로 체현한 위대한 학자, 더 나아가 인간상 그 자체였다.
불과 1950년대만 해도 주류 학계에서 통계학은 수학의 하위 학문쯤으로 치부될 뿐 그 학문적 독자성을 인정받지 못했다. 통계학이 서글피 홀대받던 시절, 조지 박스는 통계학의 위상을 세우고 가치를 재발견한 선각자였다. 통계학이란 본디 탄탄한 과학적 지식에서 비롯된다는 것, 통계학은 혁신의 최전선에서 활약하는 촉매제라는 것, 통계학은 각종 학문에서 파생하는 문제를 해결하는 실용 도구라는 것, 그래서 통계학은 개선과 진보를 일구어내는 핵심 원천이라는 것. 이 모든 게 바로 조지 박스가 입증해낸 통계학의 존재 가치다.
그리고 글로 배운 통계를 삶 속에 용해시켜 94세까지 장수, 그야말로 통계 충만한 인생을 살았다. 조지 박스는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열린 자세로 타인과 교제하고 배움을 품앗이했다. 인복이 넘쳐나고 천금의 기회가 쉼 없이 굴러들어왔던 것도 다 그가 뿌린 대로 거둔 터일 게다. 항시 오감을 활짝 열어젖혀 통계학 촉수를 갈고닦았기에 탁월한 학문적 업적을 성취했음은 물론이다. 직접 만나보지 않아도 글에서 흠씬 묻어나는 삶의 원기와 너그러움. 통계학에 대한 열정은 인간에 대한 애정으로 조응된다(그래서 남들은 1번 하기도 힘든 결혼을 3번이나…).
자신이 생각하는 통계의 이상을 한평생 일상에서 고스란히 살아낸 생활형 통계학자. 똥통에 빠진(?) 진주 같은 통계학을 구원하기 위해 이 땅에 출현한 통계 메시아. 통계학뿐 아니라 수많은 인간에게 사랑과 웃음을 흡족히 흩뿌리며 세상의 소금처럼 살다간 마이크로 히어로. 초극적 존재가 있다면 조지 박스는 분명 이 땅에 통계를 촉촉이 기름 붓기 위해 예비된 생명체일 것이다. 평소 내가 굳건히 고수하던 무신론적 세계관에 균열을 줄 만큼 존재의 의미와 필연성을 재현한 조지 박스님, 레스트 인 피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