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자 7종 세트_ <황야의 7인>
구로사와 아키라의 <7인의 사무라이>를 서부식으로 번안한 작품. 리메이크작이 2017년 개봉 예정이다. 율 브리너의 대표작 중 하나이기도 하다. 율 브리너 하면 <왕과 나>에서의 모습만 알고 있었는데 <황야의 7인>을 비롯한 꽤 많은 서부영화에 출연한 바 있는 마초의 아이콘이었다. 율 브리너 외에도 스티브 맥퀸, 찰스 브론슨 등 헐리웃 영화사의 굵직한 배우들이 대거 등장한다. 무적의 7인 중 치기에 가득찬 젊은 피 치노 역을 맡은 호스트 부흐홀즈를 제외한 나머지 모두 기라성같은 명배우들이다.
사실 영화 자체보다도 더 유명한 것은 바로 엘머 번스타인이 작곡한 불후의 테마송. 영화가 음악의 전위성에 못 미친다는 느낌이 들 정도로 경이로운 선율이다. 언제 들어도 기운이 펄펄 나고 어깨를 들석이게 한다.
의협심에 불타는 상남자들의 정의 구현. 서사의 발단은 미국과 멕시코 국경 부근의 한 가난한 농촌 마을에서 시작한다. 멕시코계의 무력한 마을 주민들은 도적단으로부터의 수탈을 견디다 못해 용맹한 총잡이 크리스(율 브리너)에게 방어를 요청한다. 이에 크리스는 7인의 정예 멤버를 선별, 정의의 사단을 꾸려 도적단에 대항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시종일관 과잉 후까시가 들어간 율 브리너의 상남자 퍼포. 우스꽝스럽기 하면서도 좌중을 사로잡는 압도적인 카리스마는 부인할 수 없다. 개중에서도 가장 휘황한 마초의 별, 찰스 브론슨 옹! 상남자의 원형이라도 해도 될만큼 정말 마초마초하다.
엘리 월러치의 자서전 및 증언에 따르면 실제 촬영 당시, 율 브리너와 스티브 맥퀸 간의 도 넘은 신경전으로 미묘한 긴장감이 흘렀다고 한다. 본인에게 스팟라잇이 주목되길 원했던 율 브리너가 스티브 맥퀸을 견제하기 시작하면서 둘의 관계는 돌이킬 수 없을 정도로 악화되었다는 후문. 역시 얼굴값은 남녀노소를 불문한다.
영화는 논란이 될만한 지점들에서 평형적 시선을 유지하고자 의식적인 노력을 취한다. 백인들이 힘없는 소수 유색 인종들을 보호하고 시혜를 베푼다는 식의 오리엔탈리즘에 부식되지 않도록 이들이 서로 대등한 파트너 관계임을 지속적으로 주입한다. 무엇보다 총잡이들의 정의 구현이 무모한 객기로 비춰지지 않도록 그들의 번민을 최대한 과장없이 묘사하고자 한다.
오라일리(찰스 브론슨)은 자신을 영웅처럼 따르는 동네 소년 무리 중 한 명이 도적단에게 대항하기 거부하는 아버지를 겁쟁이라고 부르자 그를 호되게 나무라며 '영웅'의 허상을 일깨운다. 총잡이들처럼 전면에 나서 불의에 맞서지 않는 것은 용기와 배짱이 없어서가 아니라 잃어야 할 것이 너무 많은 가장의 책임감 때문이다. 한 가정의 남편이자 아버지로서 지켜야 할 가족이 있기에 생명을 담보로 섣불리 나서지 않는 것은 현명한 판단이다. 오라일리는 이 지점을 정확히 직시하고 있고 스스로가 결코 그 책임감을 감당할만한 재목이 아니라는 것도 시인한다.
서부 영화의 일반적 공식이 그러하듯 주인공은 어디에도 소속되길 거부하는 자유로운 영혼의 의협인들이다. 사회의 불의에 기껍게 대항하지만 제도에 편입되는 것은 한사코 고사한다. 서부극의 전형적 고독한 영웅들은 그렇게 살아갈 운명을 타고난 숙명적 존재로 묘사되는데, 이 영화 역시 마찬가지다.
치코라는 얼뜨기 캐릭터가 갖는 상징성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대망의 격투 끝에 도적단을 격퇴하는 데 성공하지만 그 말로는 참혹했다. 무적의 7인 가운데 크리스와 빈(스티브 맥퀸), 그리고 치코만이 살아남는다. 과업을 완수했으니 미련없이 떠나는 것이 참된(?) 의협인의 여로건만, 치코는 마지막에 발걸음을 돌려 사랑하는 여자 곁에 남아 정착하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치코가 처음부터 7인에 어울리지 않는 그릇임을 짐작할 수 있는 단서들을 계속해서 흘리고 있다. 치코는 대의보다는 나르시즘에 입각해서 영웅의 허울만을 좆았을 뿐이고 결국 세속의 유혹에 굴복하면서 '영웅적' 한때도 싱겁게 끝이 난다. 영화가 주창하는 바에 따르면 의협인 DNA가 없다면 의협인이 되기 위한 의식적 노력은 무망하다.
균형 감각 속에서도 황야의 7인들이 발산하는 영웅적 풍모는 스크린을 쾌도난마로 장악한다. 짧고 굵은 말마디와 몸짓으로 카리스마를 토해내는 상남자들의 수컷부림, 조악한 무대 세트와 어리숙한 액션 연기도 상쇄시킬 정도로 훌륭하다. 마초력이 한껏 응축된 명작 중 명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