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중독 코스프레

아날로밍 아웃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7. 8. 20. 22:51
아날로그의 반격
국내도서
저자 : 데이비드 색스(David Sax) / 박상현,이승연역
출판 : 어크로스 2017.0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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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날로그여도 괜찮아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어디 가서 ‘나 아날로그형 인간이오’라고 성분(?) 고백하는 일이 별로 열없지 않았다. 그때 디지털이래 봤자 인터넷과 핸드폰이 다였으므로 아날로그 인간으로 사는 데 큰 불편함이 없었다.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짓누르고 난공불락의 강자로 등극한 변곡점은 아마도 스마트폰의 등장이었던 것 같다. 스마트폰을 필두로 IT 산업이 고도성장을 거듭하는 사회 급변기에 접어들면서 나 같은 ‘아날로그러’는 흡사 조리돌림을 하는 듯한 모멸의 대상이 되었다. 변화 부적응자, 쓸모없는 잉여, 비효율의 아이콘, 반문화 지향사 등 온갖 부정적인 레테르가 아날로그를 고집하는 이들에게 쏟아졌다.


어느새부턴가 점점 나 스스로 디지털보다 아날로그에 더 친숙한 사람임을 밝히는 게 수치스러워졌다. 아무리 디지털이 일상 지형도를 개편해도 아날로그를 버릴 수 없는 지점이 누구나 한 가지씩은 있다. 예컨대 나 같은 경우, 업무상 디지털로 입수한 문서는 수백 장이 아닌 다음에야 반드시 종이로 출력해서 읽는다. 모니터로 암만 들여다봐도 내용 흡수가 되지 않는 까닭이다. 종이 위에 또박또박 적혀진 글자를 봐야지만 비로소 내 것으로 각인되는 느낌적 느낌. 그런데도 ‘IT 소수자’ 마냥 아날로그가 특정 경우에선 여전히 편하지 않냐는 말조차 선뜻하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이 책을 읽으며 몇 년 전 프랑크푸르트 도서전에서 한 미국 바이어와의 미팅 기억을 긴급 소환했다. 난 약속 시간에 맞춰 노트와 펜만 달랑 들고 갔을 뿐인데, 상대방은 최신 아이패드를 가져와 현란한 상품 소개와 함께 미팅 내용을 정리하는 디지털 신공을 한껏 뽐냈다. 아날로그 대 디지털의 상반 구도로부터 오는 상대적 박탈감과 남루함에서 본격 ‘현타.’ 그리고 그제야 전시장 방방곡곡에 도배된 책의 디지털 미래를 창건하는 슬로건도 눈에 들어오기 시작, 출판업계도 탈아날로그를 시도하는 마당에는 나만 하릴없이 아날로그에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 자학했다.


그런데 저자에 따르면 아날로그로 살아도 괜찮단다. 아니, 인간 자체가 아날로그이므로 아날로그를 찾는 행위가 인간 본성을 되찾는 본능이라고까지 얘기한다. ‘아날로그의 반격’은 미화된 과거로의 회귀 혹은 노스탤지어의 소산이 아니라 물성과 경험을 좆는 인간에게 최적화된 시스템이다. 디지털 네이티브가 LP, 인쇄물, 필름카메라, 보드게임 등으로 대표되는 아날로그에 매료되는 것도 이를 방증하는 사례이다. 더군다나 디지털이 아날로그에 비해 반드시 효율적인 것만도 아니다. 길에서 목적지를 찾을 때만 해도 그렇다. 스마트폰에 들어가 네이버 길찾기를 누르는 것보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는 게 더 빠르고 정확할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이 책을 ‘아날로그로 살아도 괜찮다’는 격려로 읽었다. 그래서 이참에 쑥스러움 무릅쓰고 ‘아날로밍 아웃’을 한다. 


# 기승전 언론, 그리고 ‘디지털의 반격’이 임박했다 

각종 사회 문제의 해결점은 기승전 정치, 기승전 현명한 유저로 종착된다는 우스개 공식이 있다.이 책도 예외는 아니다. 언론은 정치에 귀속된 하위 부문. 책을 읽는 내내 아날로그를 매장한 원흉은 바로 언론이 아니겠냐며 비분강개했다. 침소봉대 식으로 아날로그의 종말을 섣부르게 예단하며 설레발 치는 언론부터 규탄 받아 마땅하다. 덕분에 대중은 언론의 ‘뽐뿌’를 받아 아날로그는 악, 오로지 디지털만이 선이라는 이분법을 내재화했고 아날로그는 하등에 쓸모없는 퇴물이라는 누명을 썼다.


‘현명한 유저’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 없이 여전히 유효하다. 저자가 역설하듯 디지털과 아날로그 어느 한 쪽만 가지고 모든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애초에 불가능하다. 상황에 따라 디지털과 아날로그를 취사선택해서 만족도를 최대화하는 게 관건이며 그걸 판단하는 게 우리 몫이다. 유저로서 현명해질 책무에 더하여 앞으로 전개될 디지털의 반격이 자못 궁금하다. ‘쩌리’라고 하대했던 아날로그가 치고 오는데 잠자코 가만있을 디지털이 아니다. 디지털은 아날로그만의 특성을 쏙 빼닮은 UX로 완전무장해서 불시에 전면 등장할 것이다. 그때도 아날로그는 과연 건재할 것인가...for REA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