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산 알라딘의 위엄
중고서점계의 공룡, 알라딘이 이곳 일산까지 마성의 손길을 뻗었다. 중고서점이라고 자본주의 논리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겠는가. 이렇게 중고서적판을 쥐락펴락 있으니 동네 중고서점들은 점점 명맥 유지조차 버거운 게 현실이다. 그러나 자본주의 둘레에선 독자도 결국 소비자로 귀착. 씁쓸한 마음이 들면서도 도보 거리에 이런 대형 편의 시설(?)이 들어서니 눈이 희번덕 돌아가지 않을 수 없다.
한번 가봐야지 하던 차라 성지 순례도 하고 산책이나 할겸 집을 나서려는데 눈에 밟히는 책더미들. 헌책 팔아 번 돈으로 다시 헌책을 되사오는 제로섬 전략을 펼치기로 결심했다. 경험상 소장책을 중고로 팔아봤자 수중에 떨어지는 건 꼴랑 쭈쭈바나 사먹을 정도의 푼돈. 본전 생각하면 짐이 되더라도 일단 가지고 있는 게 득이지만 소장 가치가 없는 책까지 다 껴안고 가기엔 가지수가 너무 많다. 한번쯤은 대대적인 솎아내기 작업이 필요한 시점. 다 읽었다고 아무책이나 막 팔아버렸다간 동상님의 후환이 두려우니(나란 여자 매맞는 언니) 뒤탈 없게끔 내 돈 주고 산 것들만 후보군에 올리고, 라면 받침으로도 안 쓸것 같은 애물단지들을 선별, 한권한권 장바구니에 쑤신 다음 어깨에 들쳐메고 알라딘으로 궈궈.
목적지로 향하는 길 곳곳마다 쏟아지는 인파 항력. 날씨가 좋다고 다들 이렇게 기어나왔구나... 최대한 인간 적은 샛길만을 골라 전력질주. 알라딘 입구에 들어서니 역시 이곳도 이미 도떼기 시장. 뭐든 일산에만 상륙하면 시장으로 둔갑하는 일산 스타일. 일산에선 무조건 박리다매로 싸고 양많고 가성비 좋은 게 갑이다. 그러하니 알라딘이야말로 일산에 딱맞는 사업 구조이다.
총 일곱권 팔아 책정된 금액이 11,160원. 지금 장난 똥때리심? 하나는 매입 불가능 표시가 뜨길래 그냥 폐기 처분해달랬다. 기대했던 것에 비해 입수 금액이 너무 말도 안되게 적어 얼척 없어지려는데 (언젠가) 읽으려고 뽑아둔 하드커버 목침 책까지 들고온 사실 발견. 어쩐지 개수에 비해 너무 무거웠다... 책을 찬찬히 넘겨보니 아무래도 죽을 때까지 안 읽을 공산이 큰 것으로 판단. 에라 기분이다(응?)라는 심정으로 예정에 없던 아이템도 과감히 계산대에 투척. 6,000원을 추가 득템했다. 기억에 2만원 넘게 주고 샀던 거 같은데... 그래도 이 정도면 앞에 것들에 비해 선방이 아니겠나하며 어리석은 자위를 했다.
개점한지 얼마되지 않았으니 깨끗하고 쾌적이야 한데, 크기에 비해 보유 종수는 왠지 한정된 느낌. 한참을 고르고 골라 읽고 싶었던 몇 권을 안고 돌아섰다. 남은 돈도 마저 써버리지 싶어 나의 고정 아이템 참에멘탈과 치아바타를 사러 롯데에 깜짝 방문. 참에멘탈에 치즈가... 치즈가 없다...! 아니 이게 그냥 맨빵이지 무슨 참에멘탈이야!!! 여기말고도 요새 천지에 널린 게 맛난 빵집임. 당분간 발길 끊는 것으로 응징하기로...
내가 제일 잘하는 게 물건 버리기. 그 다음으로 잘하는게 물건 사기. 오늘 내 두 가지 장기를 성공리에 마쳤으니 뿌듯할 만도 한데 정작 해야할 일은 하나도 못했다는 게 함정. 내가 나를 아노니, 지금 이 시간까지 안했으면 결국 끝까지 안할거라는 거. 어치피 안할 거라면 마음의 돌을 내려놓고 남은 시간 마음 편히 쉬는 게 정답이다. 흐규흐규 일요일 밤은 너무 짧고 월요일이 오는 게 두려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