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을 멈추지 않는 작가가 승리한다_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
흔히 시공간을 초월하여 문학사에서 굳건한 위상을 지켜온 고전들의 공통점이라 하면,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과 인간 군상을 담아낸 '인생의 압축판'이라는 것이다. 수백장의 페이지 속에 고스란히 투영된 인생 역정 속에서 독자들은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며 독서의 즐거움에 몰입하게 된다. 어느 장을 펼쳐 들어도 내 개인적 인생을 대입하여 몰입 가능한 감정 이입의 플랫폼. 이것이 기실 고전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고전'이라는 지위를 획득하게 하는 필요충분 조건이다.
그렇다면 제임스 미치너의 <소설>은 한 권의 책이 독자의 품에 안겨지기까지, 지난하면서도 모험적인 출판 여정을 여실히 담아낸 '출판의 압축판'격이라 하겠다. 소설의 잉태와 생산, 그리고 독자의 소비(?)에 이르는 총체적 과정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천착한다. '소설이 소설을 말하는' 자기술회적 성격만으로도 충분히 문학적 가치를 확보하는 동시에, 독자가 책에 빠져들 수 밖에 없는 마성적 매력을 발산한다. <소설>은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 이렇게 4개의 분할된 시선에서 전개되며, 소설이라는 문학 텍스트를 둘러싼 4인의 관점과 다각도의 층위에서 문학이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사유하게 한다.
소설이 출간된지도 벌써 20년이 훌쩍 넘었지만, 이야기 속에서 제기된 출판 과정에서의 현실적 문제들은 여전히 아직까지 유효하다. 더욱이 작가, 편집자, 비평가, 독자의 역할 및 문학의 의미에 대한 물음은 미디어의 급변기를 살고 있는 현 시점에도 바래지 않는 사유 영역이다. 아무리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표면적으로 인간 생활 전반에 미증유의 변혁이 발생했다 하여도, 예술의 형이상학적 본질은 불변하다. 어쩌면 이러한 사실이야말로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낙오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을까 하는 불안감을 일말이나마 해소시켜줄 수 있는 작은 위안이 되어 준다.
소설을 탐닉하는 독자들뿐 아니라 출판을 진로로 설정한 이들에게는 더할나위 없이 흥미롭고 친절한 문학적 교본으로서, 휴머니스트의 김학원 대표와 어크로스의 김형보 대표 등 유수의 출판 전문인들이 강력하게 추천한 작품이기도 하다. <소설>이 열린책들 세계 문학 시리즈의 선발 주자로 낙점된 것도 아마 소설의 물성을 문학적으로 표상한 작품 특성에 연유하지 않았을까 추측해 본다. 전 시리즈를 총망라하는 근원적인 물음이 녹아 있는 <소설>이야말로, 후속 소설 작품들의 탄생과 존재의 이유를 명징하게 뒷받침하는 추춧돌로 제격이다.
작가를 작가이게 하는 가장 근원적인 조건은 쓰기를 멈추지 않는다는 것. 이것이야말로 타고난 재능도 불식시키는 강력한 힘이자 작가의 생명력을 지속시키는 원동력이다. 비단 작가뿐 아니라 누구에게라도 글쓰기는 삶의 방향성을 잡아주는 구심점이 되어 준다.
꼭 업무적 필요가 아니라도, 교묘한 거짓으로 점철된 세상에서 속지 않고 살아가기 위해 최대한 많은 텍스트들을 섭렵하기로 스스로와 약속했고, 꽤 지속적으로 그 약속을 실천에 옮겨 나가고 있다. 그러나 다독보다 중요한 건 나의 언어로 치환해서 기록으로 남기는 것임을 절감한다. 배설되지 않는 감상은 찰나의 흥분에 지나지 않는다. 책이든 영화든, 문화적 텍스트로부터 받은 감상의 조각들을 한 줄이라도 정리해서 되새김질하는 과정은 반드시 필요하다. 저작을 멈추지 않는 작가가 승리하듯이, 부단히 기록을 게을리 하지 않는 자가 '생각대로 살 수 있는' 힘을 쟁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