왓더 코리안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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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근 시간이 짧아지면서 생활의 질은 비할 데 없이 높아졌지만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이 있다면 팟 캐스트를 한 호흡으로 듣지 못하게 되었다는 것. 매주 꼬박꼬박 챙겨듣는 것도 물리적으로 쉬운 일은 아니라 고정으로 꾸준히 듣는 거라 해봐야 고작 <파파이스>, <이이제이>, <전국구>, <빨간책방> 정도가 다인데 요샌 이마저도 여의치가 않다. 주말에 짬을 내서 <빨간책방> 몰아듣기를 하던 중 내 귀를 사로잡은 재미교포 유니 홍의 <코리안 쿨>. 내용이야 이동진의 소개만으로도 충분히 예상 가능하니 패스. 내 관심을 끌었던 건 저자의 이력. 미국에서 태어나 '압구정 현대아파트'에서 십대 시절의 일부를 보냈다는 강남 키드 1세대격. 난 사실 책보다 저자의 얼굴이 더 궁금했다.
저자 (얼굴) 써치를 하다 자연스레 이어진 신간 <코리안 쿨>. 작년 여름에 미국에서 출간되었지만 우리말 번역을 거치면서 1년의 시차를 두고 국내에선 최근에서야 소개되었다.
원제는 <The Birth of Korean Cool>. 마일즈 데이비스의 기념비적인 전설의 명반 <The Birth of Cool>을 패러디한 신통한 제목. 제목부터 호감 급상승인데 싸이를 모델로 전면에 깔린 하늘색의 화한 쿨스러움(?)에 빨려들어갈 것 같은 시원스런 표지. 이건 킨들로 살 게 아니라, 실물로 사서 봐야 쏘쿨하다며 응24에서 바로 주문. 싸이가 이 표지에서 영감을 받아 <대디>를 만든 건 아닐까 하는 억측도 해봤다.
난 웬만해선 가요도 듣지 않고 우리나라 드라마나 영화는 더더욱 보지 않는다. 내가 초중고등학교 때만 해도 팝송을 듣고 헐리우드 영화를 보는 게 쿨한 거였다. 머리가 굵어지면서 서양(대개의 경우 미국을 의미했지만)이 무조건 우월하고 동양은 저열하다는 오리엔탈리즘은 극복했지만 맹목적 사대주의에서 출발한 의도적 기피가 취향의 고착을 막진 못했다. 확실히 과거에 비해 콘텐츠 질이 향상되었다는 건 인정. 한류 열풍이 생각보다 오랫동안 영향력 있게 지속되는 지금까지 단 한번도 한류가 쿨하다고 생각해본 적 없는데 세인들은 한류가 쿨하다고들 하니 대체 어디가 쿨한 것인지 알고 싶어졌다.
저자는 1972년생. 나보다 꼭 열살이 많다. 열살이 어리고 국내에서 나고 자란 나만 해도 미국이 제일이고 우리나라는 쳐졌다는 문화 피해의식에 절은 성장기를 보냈는데, 미국에서 태어난 저자는 오죽했겠는가. 저자는 미국 제일주의가 훨씬 강고하던 80년대에 한국에 다시 돌아와 대학 진학 전까지 학창 시절을 보냈다. 선진국에서 나고 자란 '미국인' 눈에 비친 모국은 후진국에 가까웠다. 야만스럽고 후졌다고 그렇게나 무시했던 조국이 세계 경제문화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강호로 급부상한 것이다. 유니 홍과 비슷한 연배? 또는 비슷한 멘탈리티를 가진 교포들이 달라진 조국의 위상에 대경하는 것을 가까이서 적잖이 목도했다. 오랜만에 다시 밟을 조국의 풍경이 그들이 떠날 때와 비교해서 상전벽해로 달라진 까닭이다.
싸이의 강남스타일은 2000년대 인기 드라마에서 발흥한 한류가 아시아를 넘어 전 세계로 확장된 계기가 분수령이었다. 저자 역시 강남스타일로 한류가 전세계적인 화제를 모으던 2012년, 저자가 그 '강남'에서 유년을 보냈다는 사실을 우연히 알게 된 동료 편집자의 강권 아닌 강권으로 책을 집필하게 되었다고 한다. 유니 홍은 한국의 아웃사이더이면서 비한국 문화권에서는 인사이더로 분류된다. 경계에 선 주변인의 시각에서 그려보는 한류 지형은 태생적 인사이더인 나와는 또 다르지 않을까 하는 일말의 기대감으로 책을 펼쳤으나... 역시나 애초에 점쳤던 그대로 너무도 뻔한 얘기투성이었다.
한의 정서에 과도한 의미 부여는 정말 거슬린다. 가장 한국적인 정서가 뭐냐 무조건 한이 꼭 등장한다. 막장 드라마의 원류도 한, 오늘의 한국을 있게 한 동력도 한이다. 이 무슨 망발이냐. 그러고나서 어김없이 세트처럼 등장하는 국민 노래, 아리랑. 이런 도식은 이제 식상하다 못해 화가 난다. 21세기에까지 이런 공식을 가져와서 들이대다니. 80년대 교사가 누렸던 절대적 권위의 기원을 과거 시험에서 찾는 등 남남북녀, 신토불이, 샤머니즘 등 정작 이 땅에 사는 원주민들은 전혀 인지하지 않는 고릿적 패러다임에 근거한 지나친 비약은 이 책의 최대 난점이다. 가장 시의성 높은 주제를 놓고 전혀 새로울 게 하나 없는 구태의연한 해석을 내놓고 있다. 그럼에도 현직 저널리스트라는 저자의 글빨은 어디 가지 않는다. 쉽고 개미있게 이야기를 풀어가는 힘 덕에 중도포기하지 않고 유쾌하게 완독할 수 있다.
원작을 샀으니 우리말 번역본까지 살 필요는 없어서 동네 도서관에 비치 도서로 신청. 원작은 2014년 출간되었으나 국내에서는 번역, 편집 과정을 거치면서 1년의 시차를 두고 얼마전 소개되었다. 대출해서 보진 않고 앉은 자리에서 대충 훑어보았다. 번역본 표지는 정말 미스라고 생각한다. 원고 내용을 거론할 것도 없이 원작 표지만 보아도 판단착오를 확인할 수 있다. 저자를 격하할 의도는 없지만 저자는 대단히 저명한 학자도 아닌데다 저자의 이야기가 대단히 깊이 있고 밀도 높은 사회학적 접근도 아니다. 캐주얼한 내용을 너무 무게감 있게 풀어낸 게 아닌가 하는 아쉬움이 든다. 대신 내지 편집은 원작의 취약한 부분을 잘 보완했다고 생각한다. 중간중간 관련 사진을 끼워넣고 시원스럽게 텍스트를 안배해서 가독성을 높였다.
유니홍의 책 홍보 인터뷰.
<Fresh off the Boat>의 빅스타, 허드슨 양의 아버지 제프 양이 인터뷰어로 등장한다.
무슨 애가 이렇게 똘똘하고 알밤같은지 내 이다음에 아들을 낳거든 기필코 꼭 쟤같은 아들을 낳아야겠다며
경탄과 애정을 금치 못했는데 과연... 아빠가 이렇게 유머러스하고 '쿨'한 지성인이었다.
아들은 머리숱이 과해도 너무 과한 반면 아빠는 민둥 대머리다.
허드슨 양도 이다음에 나이가 들면 저렇게 다 빠지는 것인가... 아놔 유전의 마수에서 지켜주고 싶다.
유니 홍도 대체로 유쾌하고 호탕하다.
유니홍이 본책 홍보 목적으로 출연한 영상 및 오디오편은 거의 다 찾아보았는데
거개가 비슷한 문답 일변도라 그내용이 그내용 같은 기시감에 시달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