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중독 코스프레

혁명적 에로티시즘_ 물처럼 단단하게 by 옌롄커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3. 4. 7. 21:07



물처럼 단단하게

저자
옌롄커 지음
출판사
자음과모음 | 2013-02-15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낮에는 혁명을, 밤에는 사랑을!오늘날 중국 문단에서 중요한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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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중국 문학이 한창 뜨고 있다고들 한다. 그러나 대중에 익히 알려진 당대 중국 작가를 대라 하면 열이면 열 빤한 대답이 나온다. 위화, 모옌, 쑤퉁. 중국 문학의 세계에 발을 들여놓은지 얼마 되지 않은 나 역시 이 세 명을 제외한 다른 작가에 대해선 전혀 아는 바가 없다. 중국 문학을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문예적 신천지라 칭송하면서도 더욱 깊이 다가가려 하지 않은 나의 게으름과 알량한 팬심 탓임은 순순히 인정한다. 그러나 주류 작가 몇 명만을 집중포격해서 띄워주고 소개하는 현 출판 시장의 지형도 역시 책임을 피할 수 없다.  


최근 일간지 서평란에서 가장 탐서욕을 자극시켰던 책은 단연 옌롄커의 <물처럼 단단하게>였다. 역사적 환부를 거침없이 드러내는 과감함과 파격적인 성애 묘사로 중국 문단에서도 이른바 문제적 작가로 평가받는 옌롄커의 2000년도 작품이다. 4년 뒤 출간된 그의 대표작 <인민을 위해 복무하라>의 전신이 된 작품이기도 하다. 


세계 그 어떤 국가의 현대사도 중국의 그것만큼이나 격렬하고 찬란한 격랑의 소용돌이를 연상시키진 못한다. 중국 현대사는 19세기 이전까지의 중국과는 완전히 다른 공간을 창조해낸 운명적 세월이자 비극의 역설이었다. 옌롄커는 혁명가의 사명을 다해 일생을 기꺼이 소진한 젊은 남녀의 불륜을 통해 은폐된 혁명의 기억을 소환한다. 혁명과 성애를 병치시켜 인간의 원초적 욕망을 포르노그래피적 서사로 장렬히 승화했다. 탄탄한 서사 구조와 작가의 현란하고도 애잔한 혁명적 필치는 주인공 아이쥔과 훙메이의 애욕만큼이나 완벽한 합일을 이루었다. 정말이지 책을 손에서 놓을 겨를도 없이 꼼짝없이 빨려들어가 단숨에 일독했다. 이제껏 모옌식 중국식 마술적 리얼리즘이 전부라 알고 있던 나로선 모옌보다 한 수준 위의 문예적 세계를 경험했다고밖에 할 수 없다. 


여지껏 소개된 중국 문학서들을 보면 '나 중국책이야.'라고 국가적 정체성을 노골적으로 광고하는 일차원적 북디자인이 항상 공통적으로 아쉬운 부분이었다. <물처럼 단단하게> 역시 별반 다르지 않았다. 시뻘건 표지 바탕에 노랑과 파랑 원색을 대비시킨 색채 사용이나 세로쓰기 하며, 작가의 이름을 굳이 보지 않아도 중국 문학임을 대번에 눈치챌 수 있는 시각적 지표들을 총집합시켰다. 너무나도 '중국적'이기에 아름답기 그지없지만 여전히 근대적 프레임으로 중국을 바라보는 우리의 빈곤한 상상력을 확인하는 지점이다. 그러나 옌롄커가 변주하는 혁명의 열기로 온몸이 뜨거워지고 맥박이 빨라지는 무아의 상태를 지나 책장을 덮었을 땐 생각이 달라져 있었다. 이 책만큼은 이 표지가 아니고선 이 작품을 시각적으로 달리 형상화할 방법이 없을 것 같다는 자기 설득을 당해버렸다. 


자음과 모음에서 <번역가와 함께하는 연롄커 문학 읽기>란 이름으로 출간 기념 행사를 마련했다. 이 책을 번역한 문현선 번역가과 중국 문학의 원로 번역가로 잘 알려진 김태성 번역가님을 모시고 옌롄커를 비롯한 중국 문학 읽는 법을 개괄적으로 조망하는 시간을 가졌다. 문현선 번역가의 작품은 처음이지만 <물처럼 단단하게>만 두고 본다면 상당히 뛰어난 번역가임은 분명하다(는 주제 넘는 평가를 했다). 한 문장, 한 문장이 '물처럼' 부드럽고 매끄럽다. 김태성 번역가께서 언급한 옌롄커만의 고유한 문예적 음악성과 리듬도 고스란히 살려냈다. 

 

밀폐된 공간에서 오래 앉아 있으려니 두통이 급습. 두 분의 말씀이 끝나고 질의응답이 시작될 무렵 조용히 나가려는데 관계자 분께서 참가자를 위해 준비한 선물을 잊지 않고 들려 주었다. 차가워진 밤바람에 머리는 지끈거리지만 뜻하지 않게 <나와 아버지>를 손에 넣어 은근슬쩍 신이 난 귀가길. 하루에도 몇 번씩 내 두부멘탈을 가격하는 멘붕거리를 잠시나마 불식시켜 줄 훌륭한 작가를 알게 됨이 감사할 뿐이다. 




나와 아버지

저자
옌롄커 지음
출판사
자음과모음 | 2011-06-29 출간
카테고리
시/에세이
책소개
아버지 세대의 삶과 운명, 그 세월 속에 쌓여 있는 흔적과 먼지...
가격비교



(예상치 못한 뒤통수의 방해공작... 자리가 차고 나니 정작 번역가 두 분의 모습은 온전히 담을 수 없었음. 지못미)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501303221358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