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중독 코스프레

혁신 야구러가 쏘아올린 머니볼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7. 8. 20. 23:03


머니볼
국내도서
저자 : 마이클 루이스(Micheal Lewis) / 김찬별,노은아역
출판 : 비즈니스맵 2011.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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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넓고 꼰대는 많다. 사회 생활을 하다 보면 꼰대의 천태만상을 목도한다. 개중에서도 가장 무서운 부류는 “내가 다 해봤는데 그거 안 돼”라고 사사건건 어깃장을 놓는 “산전수전 과신형”이다. 자칭 뭣이든 다 해봤기 때문에 뭣이든 부러 해볼 하등의 필요가 없다. 이런 치들의 주요 특징 중 하나는 기존 방식을 그대로 고수하지 결코 새로운 길에 도전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만 안 해도 될 것인데 꼭 남도 못하게 하는 뒤틀린 심사는 물론이다. 편견과 아집의 절대 화신이라는 캐릭터에 충직하게 복무, 통념에 조금이라도 반하는 혁신이라면 백절불굴의 투지로 맞선다. 

그런데 나도 한 살 두 살 연식이 쌓여갈수록 이 병맛 쩌는 꼰대부림이 무턱대고 비난만할 일도 아니라는 심정적 공감을 하게 된다. 인간은 본디 관성의 지배를 받는 타성의 동물이다. 나이를 먹을수록 당연하게 여겨지는 일상의 프로토콜에 의문을 가지고 낯선 관점을 허용하기란 절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러니 “모든 편견을 떨쳐버리고 새로운 방식에 적응하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지만 누구나 하기 힘든, 인간 본성을 거스르는 거대 도발이자 혁신이다. 

인간이 속한 모든 영역이 그러할진대 프로야구계라고 다를소냐. 빌리 빈의 위대함은 바로 여기에 있다. 빌리 빈은 가시적이고 물리 영역 및 인간의 직관과 경험에 의지하던 기성 야구판에 파란을 불러일으킨 전설의 통계유발자. 물론 그의 업적은 헨리 채드윅, 브랜치 리키, 빌 제임스 등 야구 통계 숨을 불어넣기 위해 백방으로 잉여로운 수고를 마다 않던 선인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집적물이다. 빌리 빈을 위시하여 야구판에서 그저 무의미한 숫자들로 낭비되던 통계의 가치를 발굴, 숫자 이면에 숨겨진 언어의 힘을 읽어낸 혁신꾼들이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서 펼치는 '전복과 반전의 순간'! 

자칭 베테랑 스카우트 군단이 자랑해 마지 않는 '촉' 문법에 따르면 빌리 빈은 빠질 게 하나 없는 최적의 신체 조건과 기량을 타고난, 이론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야구 유망주였다. 그런데 필드 위의 빌리 빈은 기대에 못 미치는 실망스러운 플레이만 보여주는 한낱 마이너리거에 불과했다. 끝끝내 빛을 보지 못한 채 선수 생활을 마감, 단장으로 다시 야구계로 돌아온 그였기에, 그 누구보다 더 통렬하게 스카우트가 내세우는 '빌어먹을' 잘난 통찰이야말로 반드시 경계해야 할 (개)수작이라고 여겼을 것이다. 마치 장기판 위에 말을 두듯 선수들의 종합적인 캐파를 데이터로 전면 분석하고 실전에 적용하는 통계학적 전략으로 20연승을 달성하며 아메리칸리그 역대 최다 연승 기록의 쾌거를 이뤄냈다. 

그렇다고 데이터가 삼라만상을 대변할 수 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인간의 경험과 직관이 영 무용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스스로 대단히 특별한 존재라고 설정하며 깜도 안되는 인간 중심적 만용을 부리는 경향이 있다. 인간이  그동안 분에 넘치게 누려온 존재론적 특권 의시을 겸허하게 반납, 우리 능력을 맹신하기 보다 특정 영역에서 우리보다 더  뛰어난 '숫자님'에게 문제해결권을 이양하는 유연성 정도는 갖춰야 한다는 얘기다. 그래서 결국엔 모든 IT 영역에 해당되는 원론적인 얘기로 돌아갈 수 밖에 없다. 데이터로 환원되지 않는 미세 영역을 발견하고 이를 배합해서 균형점을 찾는 일을 누가 하겠는가? 말인즉슨 인간이 할 일이 아주 없다는 건 아니다. 

각설하고,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통계'라 하면 왠지 모를 과학 전문성과 도도한 학문성(?)으로 심리적인 위화감을 느낀다. 그러나 빌 제임스의 말마따나 야구에 통계가 필요한 이유는 순전히 “야구를 더 재미있게” 즐기기 위함이다. 그렇다면 인간만사에 통계가 개입되어야 하는 것도 결국 우리 인생에 재미와 흥취를 더하기 위해서가 아닐까. 해서 <머니볼>은 야구 통계의 발견을 넘어 통계의 유용성을 넘어 오락적 가치(?)까지 덤으로 일깨우는 장쾌한 서사 일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