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ovie buff 빙의

New York, New York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2. 12. 16. 14:34



<비열한 거리>, <택시 드라이버>, <좋은 친구들> 등 누아르적 영화의 대부로 알려진 마틴 스콜세지가 메가폰을 잡은 뮤지컬 영화다. 개봉 당시의 흥행 참패가 수긍갈 정도로 3시간에 달하는 러닝 타임을 견디기에 너무나 지루하다. 스콜세지 스스로 이 영화를 '필름 누아르 뮤지컬'이라고 명명했듯이 기존 뮤지컬 영화에서는 볼 수 없는 건조함이 있다. 블링블링 희희낙락으로 점철된 일반 뮤지컬 영화와는 다르게 드니로와 넬리의 갈등을 재즈 선율과 교차시키며 밝지만은 않는 극적 효과를 연출하고는 있으나, 영화의 몰입도를 높이는 요소들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무대 위에서 색소폰을 연주하는 드니로와 재즈를 노래하는 넬리의 장면 외 간간히 등장하는 재즈 오케스트라의 연주가 다이니 뮤지컬 영화라는 명칭마저도 어색한 게 사실이다. 


왕년의 로버트 드니로와 라이자 미넬리가 호흡을 맞춰 부부로 출연한다. 로버트 드니로는 유들유들 건달기 가득한 색소폰 뮤지션으로, 라이자 미넬리는 천부적 재능의 재즈 싱어로 각각 분했다. 개인적으로 로버트 드니로는 젊었을 때보다 나이 들어서 훨씬 더 중후한 멋이 살아 있다(제프 브리짓스도 그렇고, 남자 배우들은 대개 관록이 좀 붙었을 때 더 빛이 나는 것 같다. 단, 미키 루크는 예외 -.-). 주디 갈란드의 딸로 엄마의 끼와 재능을 고스란히 물려받은 라이자 넬리의 (망가지기 전) 소싯적 모습도 반갑다. 엄마와 똑닮은 진한 이목구비(특히 하관부)에서 갈란드와 묘하게 중첩되면서도 엄마와는 또 다른 아우라를 발산한다. 넬리는 갈란드로 대표되는 오밀조밀한 소녀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멀지만, 깊고 풍부한 허스키한 목소리에서 비롯되는 당찬 매력이 있다. 드니로는 영화를 위해 색소폰 연주를 직접 배웠다고 한다. 아무래도 급조된 연주 실력이다 보니 '성격은 더러워도 실력 하나는 끝내주는 실력파 재즈 뮤지션'을 소화하기에는 무리수인 감이 있다. 어쨌거나 그의 트레이드 마크 중 하나인 뉴욕 뒷거리의 중하류층이 즐겨쓰는 진한 뉴욕 액센트만큼(실제 뉴욕 출신)은 그 누구못지 않게 리얼하다. 


모름지기 메인 캐릭터는 관객이 공감하고 동화될 수 있을 수준의 호감도를 담보로 해야 한다. 지미 도일(드니로)의 극도로 감성적이고 즉흥적인 다혈성은 영화의 거대 골격을 지탱하는 재즈의 축소판이라 하겠으나 기본적으로 전혀 인간적인 호감도를 느낄 수 없는 나쁜 남자의 전형을 보여준다. 독단적이고 남과 소통할 줄 모르며, 가정에 대한 책임감이 결여됐을 뿐 아니라 아내의 성공에도 기뻐하지 못하는 못난 남자의 모습에서 도대체 누가 그를 감정적으로 응원하고픈 마음이 들겠는가? 이런 남자에 홀려 굴곡진 생을 자처한 프랜신(넬리) 역시 답답하긴 매한가지다. 


뛰어난 배우와 감독, 신명나는 재즈 선율까지 관객에게 어필한 수 있는 충분한 요소를 갖추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끌고가는 이야기의 힘과 연출력이 턱없이 부족하다. 아오, 내 피같은 주말에 이런 졸작을 보기 위해 3시간이나 할애했다는 게 그저 원통할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