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n't We Judge a Book by Its Co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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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리적으로나 정식적으로 여유가 생기면 꼭 도전해보고 싶은 분야가 꼭 하나 있는데 그거슨 북디자인. 북디자이너로까지 방향을 완전히 틀 생각까진 없고 내가 만들고 싶은 책 정도는 스스로 편집하고 디자인할 정도의 기예를 갖추면 더할 나위없이 좋겠다. 편집자에게 요구되는 주요 덕목 중 하나는 디자이너와의 원활한 소통 능력. 제아무리 동물적 미적 감각을 지녔다한들 이를 언어로 변환하는 힘이 부족하다면 디자이너로부터 '그럼 너가 직접 해봐'라는 소리나 듣기 십상이다. 디자인적 이론 지식과 실무 경험이 뒷받침된다면 단순히 좋다, 싫다, 별로다 같은 추상적 수준을 넘어선 건설적인 피드백을 내놓을 수 있을 것이다. 북디자인 범주 내에서 가장 중추이자 핵심은 바로 책의 얼굴이라 칭해지는 표지. 때로는 표지가 책의 모든 운명을 결정 짓는다.
북디자이너, 엄밀히 말해 북재킷 디자이너, 피터 멘델선드가 말하는 표지 이야기. 크노프 북스의 부 아트 디렉터로서 발군의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그의 손을 거친 주요 작업의 궤적을 한데 묶어 그만의 작업 철학 및 직업적 소신을 곁들이고 있다. 그의 모든 작품이 내가 추구 또는 선호하는 미적 기준에 부합하진 않는다. 그러나 새로운 시도를 두려워하지 않는 용감함만큼은 그를 따라갈 자가 없다. 뚜렷한 스타일없음이 그의 스타일이다. 예술이란 결국 새로움이고 기존의 낯익은 것들을 낯설게 하는 신선한 비틀기이다. 타성에 젖지 않도록 늘 경계하고 신선함을 보존하기 위한 그의 노력은 결과물에 고스란히 고여 있다.
멘덜선드는 커리어 전향을 꿈꾸는 이에게 희망을 준다. 그는 정식으로 디자인 교육을 받은 적도 없었고 서른을 넘긴 비교적 늦은 나이에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서 성공했다. 피아니스트가 되려던 꿈을 접고 좀 더 안정적인 수입 창출로 가장의 소임을 다하기 위해 진로 탐색을 하던 중 자연스레 흘러든 북디자인의 세계. 평소 비주얼 아트에 대한 관심과 적성을 반영한 숙고의 선택이었고 이는 적중했다. 독학으로 디자인 프로그램을 배웠고 그렇게 완성한 포트폴리오로 크노프에 입사, 낭중지추 북디자이너로서 외길을 걸어왔다.
타고난 디자인적인 감각과 모험 정신에 더하여 멘델선드가 여느 보통의 북디자이너보다 태생적 우위를 점할 수 밖에 없는 필사의 병기는 그가 열혈 애독가라는 데 있다. 그는 작업을 맡은 책은 반드시 다 완독하는 걸 원칙으로 한다. 콘텐츠를 이해하지 않고선 이를 담을 그릇을 감히 만들어낼 수 없는 법이다. 어떤 콘텐츠이든 철저히 독파해서 자신의 언어로 해석하는 과정을 충실히 이행해온 저자의 프로 의식은 직군 불문 업계 종사자라면 공히 배워야 할 부분이다. (일단 닥치고 나부터...)
세상에서 가장 멋진 직업을 가졌다고 자부하는 저자를 보면 배아프지 않을 수 없다. 나도 디자인 프로그램만 능숙하게 다룰 수 있다면 저만큼은 할 수 있지 않겠냐며 방구석에 앉아 혼자 허세를 부려보는데,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말은 참 쉽다. 정초를 맞아 올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반드시 허세를 현실로 바꾸어보겠다고 두 주먹 불끈 쥐어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