활자 중독 코스프레

soon to be 치나스키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3. 11. 12. 23:23



팩토텀

저자
찰스 부코우스키 지음
출판사
문학동네 | 2007-09-10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미국 현대문학에서 가장 독창적인 작가 중 한사람으로 불리는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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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쭙잖은 사회 생활로부터 얻은 자기 성찰 두 가지: 극강의 무관심과 태생적 뒤끝. 흥미 있는 관심사가 아니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철저하게 나에게만 집중(?)하는 무관심의 아이콘. 본디 남이사 뭘하든 신경 안쓰고 반대로 내가 뭘하든 남이 주제넘게 관여하는 건 딱 질색인데 이게 조직 생활에서는 참으로 치명적인 핸디캡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대책없는 것은 시종일관 계속되는 뒤끝. 한번 심사가 뒤틀려 닫혀버린 마음은 절대 원상복구되지 않는다. 마음 속 한켠에 차곡차곡 쌓아두다 어느 순간 임계점을 넘어버리면 혼자 마음속으로 영구제명시켜버리니 영문을 모르는 상대는 늘 벙 찔 수 밖에. 아무리 마음을 다잡아도 싫은 건 싫은 거다. '회사니까'라는 이유로 싫은 내색 하나 없이 싱글벙글 가면을 써야 하고 '직장 동료'라는 역할에 충실하기 위해 감정 노동을 자처해야 하는 일이 늘어날수록 앞뒤 잴 거 없이 때려쳐버릴까 싶기도 하다. 손가락을 빨더라도 순도 백퍼센트의 잉여 지수를 유지하며 마음 편히 살면 어떠랴. 결국 행복이란 종이 한 장 차이니까. 


어쨌거나 무탈한 회사 생활이 가장 힘든 이유 중 하나는 싫어하는 사람과도 표면적으로는 우호적 관계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밖에서야 코드가 안 맞다 싶으면 상종 자체를 하지 않으면 되니 간단하다. 그러나 조직에서 가면을 벗는 순간 자충수로 이어진다. 조직 생태계에서 살아남기 위한 첫 번째 조건은 끓어오르는 살의도 심연에 묻어두고 하하호호 억지 감정을 짜내는 혼신의 연기력이다. 


그러나 제아무리 연기의 지평을 넓히려 해도 연기력은 늘지 않고 사회적 불만만 쌓여간다. 부족한 연기도 고달픈데 동기 부여조차 성에 차지 않는 지점에 달하면 게임 오버. 사표를 극구 만류하는 이들의 공통된 의견은 뾰족한 대안없이 그만두는 것만큼 경솔하고 위험 부담이 천만한것도 없다는 거다. 대세가 어떻든 제일 중요한 건 나의 행복 아니겠는가. 넘들이야 뭐래든 뒷일은 그다음으로 미루고 싶은 충동이 일렁일 때 심호흡을 가다듬는 여유를 가질 수 있는 책. 부코스키의 분신, 헨리 치나스키의 볼썽사납고도 유쾌한 행적을 좆다보면 무념무상과 조우할 수 있다. 치나스키 사전에 스스로를 재단하는 사회화란 존재하지 않는다. 내면의 소리에 충실하게 자연 순리를 따라 살아가는 치나스키는 나의 영웅이다. 숱하게 일자리를 전전하는 무한 루프 속에는 불행도 절망도 없다. 인생의 의미는 과거와 미래가 단절된 매 순간에 있을 뿐이다.  

 

부코스키 소설에는 현실에서 감히 행하지 못했던 영역을 과감하게 넘나드는 짜릿한 쾌감이 있지만 단순히 대리만족 희열을 가져다주는 것만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가지 않은 길에서 펼쳐질 가상의 시나리오와 조우하며 '엿같은' 일상을 숙고하게 된다. 산다는 게 어디 내가 하고 싶은 것만 하고 살 수 있는 것이던가. 매 역할마다 책임과 의무가 부여되고 싫어도 어쩔 수없이 해야하는 삶의 무게를 감당하는 게 인생이다. 어떤 길을 택하여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이 남길 마련이다. 치나스키가 표방하는 자유와 방종의 아슬한 경계를 넘나들 때 원초적 쾌락이 주어지지만 반대 급부처럼 포기해야 하는 가치들이 있다. 치나스키적인 삶을 꿈꾸되 아직까지는 자기 통제력이 수반된 삶에서 얻는 안정감이 더 크므로 치나스키처럼 살기는 잠정 보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