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병맛 다이어리

근로자의날 전야제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3. 5. 1. 18:42

광화문 교보에서 <세상을 뒤바꾼 새로운 생각들>이란 표제로 4월 말까지 디자인 북페어를 열었다. 막내리기 전에 어찌 생긴 행사인지 둘러보기나 하자 해서 마지막 날에야 부랴부랴 발길을 향했다. 얼마 전부터 육회육회 노래를 부른고로 저녁은 광장 시장에서 해결하기로 결정휴일 전날이라 도착했을 땐 이미 인파가 바글바글 시장을 장악한 상태였다. 깨알 볼거리가 풍성한 시장 구경은 언제나 신 나지만 인간 많은 건 이유불문 질색이다. 오늘의 목표 수거물, 마약김밥과 육회를 입수한 뒤 서둘러 교보로 이동했다. 



그.런.데.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북페어가 한창 철수중인 광경을 목격하고 아연했다. 분명 7시 반을 조금 못넘긴 때였고, 아직 페점까지는 두 시간 이상이 남았는데 이 무슨 낭패인가 싶어 억한 심정이 들었다. 어쨌거나 서점 순례는 마음에 위안과 자극을 주니께, 허탕친 게 분하지만 오늘만큼은 호연지기로 참기로 했다. 




외서 코너를 둘러보다가 하코트판 <검은 꽃>을 발견했다. 우리 작가의 좋은 소설들이 이렇게 세계로 뻗어나가는 건 참 고무적이지만, 소설의 내용이며 분위기를 전혀 읽을 수 없는 저 표지는 정말 얼척없다. 시대의 제물로 희생되었던 멕시코 이주 한인 1세대들의 애환이라든지 역사 앞에 무력한 개인의 비애 등 작품의 느낌을 살릴 수 있는 시각적 장치가 고작 저 정도밖에 없었을까? 적어도 표지라면 텍스트와 맞닿은 지점 정도는 독자에게 알려 주는 친절함견지해야 하지 않나 하는 아쉬움이 들었다. 


서점 순례의 백미는 누가 뭐래도 오프라인에서만 단독 진행하는 할인 도서 득템하기! 에밀 졸라,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 조이스 캐롤 오츠 등 유명 작가들의 일부 작품들을 한정 기간 동안 1000원~7000원의 염가로 판매한다. 당분간 책 사는 건 금지라고 굳게 다짐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좋은 작품들을 이렇게 좋은 가격에 살 수 있다니 이것은 소비가 아니라 투자(?)다'라는 자기 합리화에 굴복했다. 


예전에는 고전은 원문을 읽어야 제맛이라는 허세에 양서만을 골라 샀지만, 문제는 사놓곤 어려워서 몇 장 들춰보다 결국엔 읽지 않게 된다는 것. 우리말로도 잘 안 읽히는데 영어로 보면 더더욱 요령부득이다. 그래서 이젠 고어나 사어가 빈번 고전이나 명저들은 가려내고 무조건 흥미를 돋우는 현대물 위주로 고른다. 안그래도 평소에 영어 쓸 일이 많지 않은데 근 몇달간 원서도 통 읽질 않아 그나마 있던 감마저 썩어가니 걱정이다(지금 한 권을 몇 달째 붙들고 있다). 이참에 한동안 게을리했던 원서 읽기에도 박차를 가해야겠다 싶어 할인 매대를 어슬렁거리다 세 권을 득템했다. 


표지 한 귀퉁이에 에이미 탠의 짧은 추천사가 눈에 띄어서 산 <The last Time I saw mother>. 제목이나 에이미 탠을 내세운 것만 봐도 모녀간의 관계 및 여성의 정체성을 다룬 여성 문학임을 대번에 알 수 있다. 딱히 내 취향은 아니나 이런 류가 부담없이 원서 읽기를 이어가기에 알맞다. 필립 로스의 비교적 최근작인 <Exit ghost>와 <The humbling>도 눈에 띄어 동날새라 얼른 집어들었다. 로스는 얼마 전 <에브리맨>으로 처음 영접했다. 가정과 사회에서 밀려나는 초로 남성의 헛헛한 심리을 건조한 문체로 그려내고 누군가의 아버지이기 전에 한 자연인으로서의 인생에 천착하는 작가의 시선이 좋았다. 가장 최근작인 <The humbling>은 아마존에서 가혹하다 싶을 정도로 혹평을 받았는데 과연 온당한 평가인지 일단 직접 읽어 보고 판단해야겠다. 



'병맛 다이어리 ' 카테고리의 다른 글

거짓말 아니고 나 정말 시간이 없다고!  (0) 2013.07.17
일상의 즉효약  (0) 2013.05.09
Go Raw  (0) 2013.03.23
불량 청자의 고뇌  (0) 2013.03.16
'자발적' 까기  (0) 2013.03.03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5/07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