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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들로부터 빈번하게 받는 오해 중 하나가 바로
내가 출판사에 다니고 있다는 것.
나 이제 출판사 안 다닌다고 자상하게 정정을 해줘도
이다음에 또 만나면 한다는 소리가
'그래 너 아직도 출판사 다니고 있지?'
출판사 다닌 경력이래봤자 4년이 채 안되고
정작 단행본 편집도 해본 적 없는 출판 뜨내기인데
뭘 모르는 지인들 사이에선 '난 = 출판사 다니는 애'라는 얼토당토않은 공식이 굳혀졌다.
출판은 아니다 싶어 밑져가면서도 지금 회사로 이직을 했고
다시는 출판업계로 돌아가지 않으리라 작심했으면서도
어쩌다 누가 출판사 관련 이직 정보를 주면 읭 하며 솔깃해진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남루한 유관 경력이라도 내세울 유일 분야라서이기도 하지만
하기 싫은 일은 절대 못하는 성격에다
현실적 조건에 타협하기보다 꼴에 의미가 있다고
판단되는 일을 하겠다는 대승적 소신의 발로로서
출판은 여전히 업의 여지를 두고 싶은 부문이다.
(못다이룬 편집자의 비애와 패배의식도...)
저자 유재건은 한국출판인회의 출판사업위원장과 그린비출판사 대표를 역임했던 참모급 출판인.
한창 단행본 편집자로 이직 준비했을 때 눈여겨 봤던 출판사 중 하나.
(그러나 인문학적 소양이 일천하여 지원은 감히 하지 않...)
얼마간 시끄러운 잡음도 있었던 걸로 기억하는데,
뭐 털어서 먼지 안나는 출판사는 없는 고로
양질의 콘텐츠를 생산하는 꽤 괜찮은 출판사로 인식하고 있다.
장은수, 변정수, 한기호, 이홍 등 원로/전문 출판인들이 펴낸 책은 열책 제쳐두고 읽고 본다.
편집자 성역을 뚫는 데 실패한 루저이자, 순수하게 출판계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업계전문인의 관점에서 해석한 현업 실정 및 출판계 동향을
어렴풋이나마 깨치는 데 신뢰도 높은 부표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저자는 절체절명의 출판을 살리기 위해서
21세기 디지털 사회에 적합한 모델로의 체질 개선을 강력히 촉구한다.
과거 출판은 책으로 완벽히 치환 가능했다.
그러나 이제 책은 출판의 등가가 아니라 종속 개념이다.
아직도 대다수는 책의 프레임에 사로잡혀 출판의 경계가 어디까지인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다.
수세적인 태도로 일관할 게 아니라 낡은 관점을 혁신하고
패러다임의 변혁을 이루어서 새로이 판을 짜야 한다고 역설한다.
해서 저자는 '출판은 무엇이다'라고 규정하는 게 더 이상 무의미해진 현 시점에서
'무엇이 아닌 게 돼버린 출판'을 덜어내며
아마득해 보이는 당면 과제의 장막을 하나씩 벗겨나가자는
역산 방식의 논지를 펼치고 있다.
저자에 따르면, 전 업계가 합심해서
가변하는 웹의 공간에서 복수적 층위의 다양한 콘텐츠를
창발 생산하는 비선형적인 출판으로 변모해야 하는 사명을 띠고 있다.
출판사마다 적극적으로 플랫폼을 만들고 소셜미디어와 디지털 기술을 십분 활용해서
콘텐츠의 전략적 노출을 꾀하고 독자 스킨십을 강화하는 네트워크를 구축해야 한다 등등
저자의 주장은 구구절절 다 맞다.
너무 옳아서 한 문장 건너 한 문장 한문자 일일이 동의하기도 힘이 부친다.
종이책의 입지가 점점 좁아질 게 자명하고
그런데 아직까지는 전자책 시장이 생각만큼 강세를 보이진 않는 거 같고
독서 인구는 지지부진 도무지 늘어갈 기미가 없고
경영난에 시달리는 출판사 숫자만은 꾸준히 증가세를 보이는 듯 하고
급기야 국내 최대 규모의 서적도매업체가 부도가 났다는데
출판의 향배를 도무지 가늠할 수 없는 총체적 안개 속에서
국내 출판업계가 국면타개를 위해 어떤 新문법을 도입해야 하는지
구체적인 수준까지 타고 내려가 따박따박 상술하고 있다.
저자는 책 머리에서 밝혀두길,
'이 책은 출판에 관심이 있는 모든 사람이 읽으면 좋을 책'으로서
출판을 화두로 하는 모든 이에게 유용한 이정표일 것라고 저술 목적을 분명히 한다.
저자의 저작 의도에 충일하게 부응하사
'편집자 워너비'의 관점에서 일독했고 부득불 딴죽을 걸자면,
그간 묵혀두었던 궁금증을 해소시키는 명쾌한 제언으로 쏙이 다 시원해지는 한편
이 모든 언감생신격 처방에 대항하고픈 반항심이 뭉게뭉게 피어오른다.
내가 더 늦기 전에 출판계를 떠나야겠다고 작심한 이유는 오직 하나,
이 동네가 '가성비'가 현격히 떨어지는 직업군이기 때문이다.
편집자가 책만 잘 만들어서 먹고 살던 시대는 지나갔다.
책 잘 만드는 건 하등의 메리트도 없는 최소한의 기본,
급변하는 사회 트렌드를 읽어야 해,
특히나 출판과 직결된 과학기술 부분에 특히나 신경써서 들여다봐야 해,
그 속에서 대중의 니즈와 원츠도 파악해야 해,
책은 결국 디테일이니 숲만 볼 게 아니라 풀때기도 뜯어볼 정도로 꼼꼼해야 해,
저자를 비롯한 외주자와 소통도 원만해야 해,
이제는 (망할) 소셜미디어로 24시간 독자 케어까지 투신해야 해,
이 모든 걸 다 쳐내고 나면 내 개인의 삶이 끼어들어갈 자리가 1도 없다.
업무 과중으로 일과 개인이 도저히 양립할 수 없는 건 기정 사실이고
저녁이 있는 삶은 지나가던 개에게나 줘버릴 구호다.
이렇게 쌔빠지게 일을 해도 시장을 선도하기는 커녕
겨우 낙오되지 않을 현상유지 수준에 불과한데
편집자에 대한 처우는 여전히 기가 찰 정도로 형편없으니
위기의 출판을 쇄신하자는 외침은 무던히도 공허하다.
(저자의 말을 굳이 빌리지 않아도 편집/영업/제작으로
구분되던 업무 영역의 경계도 허물어지고 있는 게
주지의 현실이므로 편집자도 출판노동자라고 지칭하는 게 맞나 잠시 자기검열...)
아마 이 동네처럼 업무 강도 대비 박봉인 데도 없을 터인데
그렇다고 전문성을 인정받는 게 아니니 교수처럼 명예가 있길 하나
이건 뭐 거저 먹겠다는 심보가 아니면 뭣이냐.
온갖 그림자 노동을 강요받으면서도 그에 상응하는 정당한 보상조차
받지 못하는 게 업계인 거개가 처한 보통 사정이렸으니
편집을 비롯한 출판업 전반이 밥벌이 정상화부터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출판계 체질 개선이란 핵노답이다.
하부구조가 상부구조를 지배하는 게 밥벌이 이치이거늘
업계인들이 저자만큼 유식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알면서도 못하는 게 아니겠냐며
업계인도 아닌 주제에 업계인마냥 주제 넘은 열폭 좀 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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