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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맛 다이어리

진격의 비루함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3. 10. 15. 17:23

모든 여정에는 끝이 있음에 얼마나 감사한지!  킬힐을 타고 노동 플러스 알파를 하려니 체력적 한계까지 덮쳐 하루가 48시간마냥 지난하더니만 어느새 한 주가 훌쩍 흘렀다. 프랑크푸르트에 가면 차원이 다른 스케일에 압도당할 거라는 선배의 말마따나 6관에 짜져 있다가 8관에 들어서니 이거슨 신세계. 시골 촌놈이 대도시에 상경했을 때의 문화적 충격이 딱 이러하지 않을까. 북경 때만 해도 해볼만 하다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들었는데 이번엔 스스로가 비루하게 느껴져 쭈그리가 된 기분이다. 특히 영미권 애들의 적극성과 프로페셔널리즘에 주눅만 실컷 들다 돌아왔다. 내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에 대한 자괴감을 안고 앞으로 어떤 방향 감각을 탑재하고 살아야 할지가 또다시 고민이다. 


근 10년 만에 다시 밟은 독일 땅은 영 시시껄렁하다. 서비스 마인드 제로에 유색 인종을 무시하는 게르만의 거만함이야 여전하고, 유럽에서나 염가로 살 수 있었던 아이템들을 이제 한국에서도 얼마든지 비슷한 가격대로 구매 가능하니 쇼핑의 쾌감도 줄었다. 유로는 또 얼마나 올랐는지 금유로가 따로 없다. 독일이 정체되었다기 보다 한국이 그만큼 괄목할 수준으로 발전했다는 편이 맞다. 확실히 한국에 비해 유럽이 모든 면에서 느리지만 변화의 속도를 주도하는 유럽 특유의 기개가 있다. 속도에 조급해하거나 휘둘리지 않고 변화를 충분히 체화할 줄 안다. 소프트웨어가 하드웨어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는 우리와는 판이한 양상이다. 문화 수준은 결국 이런 데서 판가름 난다. 


밖에 나오면 애국자까지는 못돼도 극단적 인종차별주의자가 될 수 밖에 없다. 덮어놓고 일반화의 오류라고 비난할 할 게 아니라, 인종 스테레오타입이야말로 충분한 실증 사례를 바탕으로 한 신빙성 높은 데이터다. 디스트리뷰터가 아니라 퍼블리셔라고 했더니 급정색하며 가져간 카탈로그를 도로 내놓으라 하던 인디언 생키. 살면서 이렇게 불쾌하고 서러워보기도 처음인 듯. 너 같이 기본적인 비즈니스 매너도 없는 새키는 나라 망신 시키지 말고 짜지라고 하고 싶었지만, 현실 속 나는 그저 인종 카스트의 수드라, 동양 여자. 아 정말 스탠드를 불살라버리려다 참았다. 코케이전의 하대는 참아도 같은 유색 인종한테 개무시를 당하면 기분이 배로 더러운 인종 차별의 역설. 각설하고 집이 최고구나. 정신 차려보니 반토막난 10월. 이 짓을 계속 할 수 있을지는 자신 없지만 어쨌거나 가끔 이렇게 콧구녕에 바람 쐬고 오는 건 기분 전환에 그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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