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The Things They Carried
- 저자
- Tim O'Brien 지음
- 출판사
- Houghton Mifflin | 2010-03-02 출간
- 카테고리
- 문학/만화
- 책소개
- On the twentieth anniversary of its...
살면서 트라우마처럼 달라붙어버린 사건들이 있다. 대수롭지 않다면 대수롭지 않은 일인데도 그 전후가 무 가르듯 극명하게 달라져버렸으니, 생사의 길목을 오가는 전쟁의 기억이 한 개인에게 미칠 영향력이란 태생부터 안온한 일상에 길들여진 보통 사람이 결코 이해할 수 없는 천추의 후유증을 새길 것이다.
전쟁은 인간의 심연을 길어올리고 탐문하는 극한의 공간적 배경을 제공한다. 그러나 전쟁을 배경으로 한 모든 텍스트가 인간의 심연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벼리는 데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전투 장면과 도륙의 처참만이 난무한 나머지 실존 탐색이나 인간 내면의 점묘에까지 이르지 못하고 서사가 종결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이 책은 표면적으로 베트남 전쟁을 소재로 한 전쟁 소설이지만 죽음과 삶의 기로에 선 인간의 실존을 평이한 언어와 덤덤한 어조로 탐구한다. 전쟁 한가운데서 현장을 묘파하기보다 베트남 참전 용사였던 화자가 과거와 현재를 교호하며 소회하는 구성으로 기술된다.
오브라이언은 실제 개인적 경험을 소설로 육화했다. 평생 지워지지 않을 기억의 멍에를 소설 창작에 기대어 일소했다. 그가 살아낸 질곡의 시간을 글쓰기로 복원하며 온축되어 있던 고통과 상처를 초극한다. 스토리텔링은 상처를 치유할 뿐아니라 의미를 창조하며 생명력을 불어넣는 주술 활동이기도 하다. 오브라이언과 그의 동고동락 전우들은 베트남 전쟁에 참전했던 수많은 미국 청년들 중 한 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오브라이언이 고통의 기억을 이야기로 남김으로써 그들은 유일무이한 불멸의 존재자가 되었다.
전쟁은 불확실성이 팽창된 살육의 현장이다. 응결된 광기가 범람하는 가운데 한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운명의 시험대와 같다. 피아의 구분도 어느덧 퇴색되고 오로지 생존만이 절체절명의 과제로 남겨진다. 인간 존엄성이 위협받고 인격의 밑천이 드러나는 극한 상황으로 끊임없이 내쳐지는 것이다. 뚜렷한 명분이나 동기 없이 일방적인 국가의 부름을 받은 스무살 남짓의 어린 청년들이 감내하기엔 너무나도 가혹한 처사였다. 그들이 짊어졌던 것은 온갖 짐스런 병기와 소지품만이 아니었다. 운좋게 살아남았다는 한시적 안도감이 사라지면 필연적으로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 죽음의 냄새가 진동하는 두려움에 포박당한 채 전쟁은 인간과 인생이라는 근원적 물음을 끈덕지게 길어올릴 수 밖에 없는 상흔을 남겼다.
오브라이언은 지극히 개인적으로 비춰지는 후일담 양상을 궁극적으로 거시점 관점에서 조망한다. 미시 묘사를 확장시켜 베트남 전쟁이 담지한 역사적 진실과 보편성을 획득한다. 국가는 제국주의 이권 찬탈을 위해 불필요한 전쟁 개입을 감행하지만 정작 피의 대가를 치러야 했던 것은 권력의 피라미드 가장 말단에 있는 평범한 시민들이었다. 생존해서 돌아온 참전 용사들은 대부분이 정신과 육체적인 후유증으로 고통받을 뿐 아니라 완전히 사회 복귀하는 데 실패하고 주변화되었다.
국가는 이들을 베트남으로 보내는 데 그토록 열성적이었지만 그들의 재기에는 무관심하다. 사회는 그들의 이야기를 묻지도 들으려고도 하지 않는다. 한낱 환영식과 훈장 따위로 눙치며 그들을 입막음한다. 소설 집필에 가장 결정적 영향을 미친 동료 노만 보커스의 죽음은 사회적 차원에서 운위되어야 할 시사점을 던진다. 보커스의 아버지조차 그의 이야기에 귀기울이지 않는다. 보통 사람들에게 전쟁 이야기는 따분할 뿐이다. 그저 무사히 돌아온 것으로 족하다며 그들의 이야기를 무화한다. 부모도 친구도 이야기 할 통로가 막혀버린 보커스의 영혼은 서서히 곪기 시작하고 결국 그는 생을 놓아버린다. 전쟁터에서의 폭력뿐 아니라 전쟁에서 파생된 사회적 폭력까지 서사 속에 용해했다.
잘 짜여진 직물처럼 매끄럽게 서사를 전개시키는 천의무봉의 작법도 탁월하지만 문장 자체가 내포한 미학적 정교함은 대가라고 할 만큼 웅숭깊다. 전쟁의 참상과 인간의 광포함이 돌올한 전쟁 서사물 그 이상의 문학적 성취를 보여준다. 아름다운 문장 사이로 비져나오는 비언표화된 비감은 베트남 전쟁 증후군으로 고통받는 이들의 끝나지 않은 이야기를 더욱 시리게 만든다.
팀 오브라이언을 두고 '베트남 전쟁의 초상화가'라고 평한 존 업다이크를 비롯한 여러 문호 및 언론지들의 상찬은 허황한 수사가 아니다. 1990년 초판이 발행된 이래, 지금까지도 베트남 전쟁을 다룬 걸작으로 회자된다. 우리말 번역본은 현재 절판 상태이다. 내부 사정이야 모르겠지만 이런 책이야말로 꼭 복간되어야 마땅하다.
'활자 중독 코스프레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전복과 반전의 이음새로 엮은 강헌의 음악사 (0) | 2015.09.28 |
---|---|
못난 욕망이 들끊는 탐욕지대 (0) | 2015.09.26 |
색소폰 자양강장 (0) | 2015.08.09 |
서울 작파 교본 (0) | 2015.07.20 |
<재미가 없으면 의미도 없다>_ 북스피어, 마포 김사장의 출판 간증담 (0) | 2015.07.0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