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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중독 코스프레

애달픈 김애란식 비극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4. 11. 30. 15:15



비행운

저자
김애란 지음
출판사
문학과지성사 | 2012-07-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언니이고 누나이며 친구 같은 작가, 김애란 여름밤, 선물처럼 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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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좋아하는 한국 작가가 누구냐는 질문을 받으면 으레 디폴트처럼 끼워 넣는 작가 2인조가 있는데 바로 김애란과 황정은이다. 이 둘은 신경숙, 은희경, 조경란, 공지영 등 기존 여성 작가에게서 볼 수 없었던 희한한 문학 문법을 구사한다. 황정은의 소설을 처음 읽고 자연스레 김애란을 떠올렸지만 그렇다고 이 둘의 문학적 색깔이 오버랩되는 것은 아니다. 분명히 서로 다른 문양을 이루면서도 언어를 조물락 무쳐대는 문학적 손끝이 여물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먼저 김애란에 대해 말해보자면, 그녀의 첫 단편집 <달려라 아비>를 읽었을 때 세상에 이런 언어를 구사하는 작가도 있구나 하며 전율했다. 소설가라 하면 나보다 열댓살은 더 많은 '어른'을 떠올리는 예사인데, 나보다 고작 두 살 많은, 비슷한 시기에 학교를 다니고 동시대를 통과했을 선배가 이런 글을 썼다는 게 더 큰 충격이었다. 80년생, 당시 스물 다섯 새파랗게 젊은 작가의 출현은 평론계를 열광시켰을 뿐 아니라 예술적 답보 상태에 있다고 여겨지던 2000년대 한국 문학계의 총아였다. 세대가 공감할 소재를 초현실적 작법으로 직조하는 탁월함은 특히 젊은 독자층을 매료시켰고 그녀를 단숨에 세대를 대표하는, 나아가 한국을 대표하는 젊은 작가 반열에 올라서게 했다.      


무릇 1년 반이 지난 지금에서야 김애란의 가장 최근작 <비행운>을 꺼내든 데에는 그럴만한 애독자적(?) 이유가 있다. 이전작이었던 <두근두근 내 인생>은 실망스럽다 못해 이제 김애란도 한물 갔구나 하는 극단적 결론에까지 이를 수준이었다. 지나치게 감상적이고 말랑해진 문장들은 김애란의 것이라 도저히 믿어지지 않았다. 해서 뒤늦게 마뜩잖은 기대감으로 펼쳐든 <비행운>. 모든 건 나의 기우이자 삐딱함이었던 것으로 판명났다. <두근두근 내 인생>에서 다소 무뎌진게 아닌가 싶었던 김애란의 작설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 있다. 세대론의 비평 텍스트로도 모자람 없이 '지금 여기'의 감춰진 이면을 낱낱이 묘파한다.  


<비행운>의 주인공은 하나같이 사회에서 소외받고 백안시되는 기층민이다. 재개발 지역에서 위태롭게 생존을 이어가는 신혼 부부, 변변한 교육도 받지 못하고 사납금의 노예로 연명하는 택시 운전사, 속물 소비에 희생되고 불안정한 자존감에 흔들리는 20대, 유령처럼 배제되어 화장실 오물을 줍고 세면대를 닦는 중년의 여성 노동자, 헤어진 남자친구의 꾐으로 빠져든 다단계에서 탈출하기 위해 제자를 파는 20대 등, 고개를 조금만 돌리면 곳곳에 산재한 이웃의 이야기들이 한 폭의 초현실화가 되어 막이 내린다. 소설이 종결되어도 그 이야기들은 버젓이 진행 중이고, 김애란의 자장 안에서 실존적 물음을 환기한다. 비극은 아프지만 김애란의 문장들은 따뜻하고 그래서 위안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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