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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탑 햇>은 <그린 마일>에서 '영화 속 영화'로 삽입되어 이야기가 발전되는 두 차례의 고비를 장식한다. 초반부에 등장하는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 버전의 <Cheek to Cheek>은 폴이 무뎌졌던 고통의 기억을 호출하는 신호탄으로 작용한다. 교도소 간수 폴은 너무도 특별했던 사형수 존 커피를 반추하며 그를 처음 만났던 1935년 그해 여름을 복기한다.
후반부에서 죽음을 앞둔 존 커피가 바랐던 마지막 호사는 영화 관람이었다. 커피는 오직 그만을 마련된 영화관에 앉아 난생 처음 마주한 스크린 앞에 온통 마음을 뺏겨버린다. 감미로운 선율과 주인공들의 현란한 탭댄스에 눈을 떼지 못하며 두 눈을 반짝이던 그의 모습은 오래도록 잔상에 남아 코끝을 시큰하게 만든다. 세상의 모든 고통과 악을 보고 들어야만 했던 초인적 운명에서 벗어나 이제는 쉬고 싶다는 커피의 바람대로 I'm in heaven으로 반복되는 노랫말은 곧 치러지게 될 그의 '해방'을 예고하는 전주곡이다. 마지막 사형을 앞두고 보통의 사형수가 자신이 행한 죄를 고백하는 것과 달리(sorry for what I did), 커피는 자신이 타고난 저주스러운 신기에 비통해 한다(I'm sorry for what I am).
<탑햇>은 30년대 스크루볼 코미디 뮤지컬의 전형적인 공식을 답습하는 오래된 흑백 고전 영화지만 두 남녀 주인공의 귀여운 밀당과 다소 심심한 갈등 구조 안에는 시간이 흘러도 바래지 않는 유쾌발랄함이 있다. 고전 영화가 점점 편안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아무래도 관객이 숨 쉴 틈조차 내어주지 않고 화려한 테크닉의 병기로 밀어붙이는 요즘 영화 트렌드와 비교해서 호흡을 고르며 감상의 추이가 틈입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영화 <그린 마일>은 스티븐 킹의 동명 소설의 각색판이다. 킹은 영미권에서 상당한 지위와 입지를 성취한 현대 작가다. 그의 소설만을 다루는 대학 강의가 개설될 정도로 그의 작품 세계를 학문적으로 접근하는 활동 또한 활발하다. 이와 대조적으로 우리나라에서 킹은 본국 수준의 대중적 인기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저평가되는 작가 중 한 명이다. <미저리>, <샤이닝>, <캐리> 등 그의 작품 대부분에서 나타나듯 인간 내면의 숨은 광기를 파헤치는 그로테스크한 이야기마다 등골을 타고내리는 서늘한 공포가 내재되어 있다. 그의 소설들은 하나같이 조금씩 사이코적인 데가 있어 읽고 나면 왠지 석연치 않은 텁텁한 끝맛이 느껴진다. 사이코적 감수성은 차치하고라도 킹의 작품은 우리나라 정서에 약간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지만, 장르적 취향도 인성의 판단 근거로 작용할 수 있는 풍토상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은 두터운 팬층이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서스펜스 영화의 거장으로 알려진 히치콕이 실제로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만든바 있듯이 스티븐 킹 소설의 장르적 스펙트럼 역시 '호러'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킹은 공포 외에도 초자연적 현상에도 천착하는 경향을 보이는데 <그린 마일>은 그 후자에 속한다.
밑도 끝도 없이 등장하는 존 커피의 초능력은 영화의 몰입도를 흐리는 방해 요소로 작용하지만 원작이 그렇게 생겨먹은 걸 어찌할 수 없으니 논외로 하자. 탐 행크스를 비롯한 개성파 배우들의 안정감 있는 연기도 훌륭하고 죽음을 사색하는 휴머니티와 유머가 마음을 따뜻하게 적신다. 무려 3시간이라는 긴 러닝 타임도 잊을 만큼 감흥이 컸다. 2000년 개봉작을 두고 대체 왜 이제 와서 뒷북 열광이냐고 힐난한다면 그 당시 난 입시에 매인 수험생이었다고 항변하겠다. 이 두 영화만큼은 시차를 두고 꼭 한 번 다시 볼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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