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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buff 빙의

불멸의 히치콕 서스펜스, <Notorious>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3. 3. 2. 12:03


오명

Alfred Hitchcock's Notorious 
8.7
감독
알프레드 히치콕
출연
캐리 그랜트, 잉그리드 버그만, 클로드 레인즈, 루이스 칼헌, 레오폴딘 콘스탄틴
정보
로맨스/멜로, 스릴러 | 미국 | 101 분 | -


요즘 한창 뜨거운 뮤지컬 레베카 때문이기도 하고, 문득 히치콕 영화가 보고 싶어졌다. 보지 않은 작품 가운데 가장 괜찮을 것 같은 것들 몇 개를 압축. 사실 <Rope>가 가장 구미가 당겼으나, 토렌츠 다운이 언제 완료될지 기약이 없는 관계로 일단 제일 먼저 다운이 완료된 <Notorious>부터 시작했다. 


분명 보지 않은 영화가 틀림없다고 생각했는데, 영화가 종반부로 치달을수록 점점 뚜렷해지는 기시감에 혼란스러웠졌다. 잉그리드 버그만이 와인 창고 열쇠를 바닥에 떨어뜨려 옆으로 치우는 장면에서 봤던 영화라는 확신이 들었지만 여전히 내 기억력이 이 수준까지 감퇴했다는 걸 인정할 수 없고;; 예전 수업 시간에 본 거라면 분명 퀴즈 대비를 위해 몇번이고 반복해서 달달 외울 정도로 봤을텐데 어떻게 기억이 이토록 희미할 수 있는지 내머릿속 지우개가 저주스러울뿐. 확실히 기억력이 예전만 못한건 맞지만, 단순히 봤던 영화 내용이 생각나지 않는 정도가 아니라 이 영화를 봤는지 안 봤는지조차 기억이 가물하니 노화의 징후인가 싶어 슬며시 서러워진다. 


대부분의 고전 영화들이 그러하듯, 플롯은 대단히 단순하다. 그러나 섬세한 심리 묘사와 카메라를 다루는 히치콕의 뛰어난 예술성 및 기지에 초점을 두면 그의 감각은 과히 천재적이다. 한컷 한컷에 담긴 히치콕 signature를 찬찬히 음미하면서 감상하는 것도 꽤나 쏠쏠하다. 무엇보다 바이킹의 후예답게 기골이 장대하여 세기의 미녀라고 하기엔 지나치게 선이 굵다고 생각했던 잉그리드 버그만이 이렇게나 고혹적인지 미처 몰랐다. 그런가 하면, 전형적인 미남상임이지만 유들유들 기름기 가득한 캐리 그랜트는 다시 봐도 참 매력 없다. 개인적으로 제임스 스튜어트였다면 더 좋았을 걸 하고 아쉽지만, 데블린 캐릭터에는 인간미 넘치고 정감 가는 지미 스튜어트 보다는 캐리 그랜트가 적격임은 틀림없다. 


히치콕 영화의 recurring theme 중 하나인 엄마와 아들간의 기형적 유착 관계가 <Notorious>에도 등장한다. 두 남녀 주인공의 연기도 압권이지만, 무엇보다 이 영화의 hero는 세바스천 역을 맡은 클로드 레인즈다. overbearing한 엄마의 유약한 아들이자 위선적 나치 캐릭터를 실로 완벽하게 소화했다. 구척장신의 잉그리드 버그만과 대비되어 안쓰러울 정도로 작은 키에 왜소한 체격이 세바스천이란 인물을 더욱 실감나게 표현한다. 데블린을 향한 알리시아의 연정과 그녀의 정체를 알아챈 이후 겪게 되는 복잡다단한 감정 변화를 오로지 불안한 눈빛 및 표정만으로 전달하는데, 그 탁월한 연기력만큼은 혀를 내두를 수 밖에 없다.  

<39 Steps>, <Rebecca>, <North by Northwest> 등 당시에는 그저 지루하고 어설프게만 느껴졌던 영화들도 다시 보면 전혀 다른 인상으로 다가올 것 같다. 과연 문학과 영화를 위시한 모든 고전 텍스트의 묘미는 시차를 두고 볼수록 감상의 진폭이 크다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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