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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buff 빙의

주성치의 (난감한) 귀환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6. 6. 18. 11:24

 

 

왕이 귀환했다.

생사 여부마저 갸우뚱하던 주성치의 건재를 알리는 신작 두둥!

 

주성치가 국내에서 도타운 마니아 층을 양산하던 시절,

나 역시 자타가 공인하던 주성치 빠였지만

주성치가 하락세를 걷기 시작하던 2000년대 중반 이후부터

시나브로 주성치와 멀어지기 시작,

(주성치 스스로가 영화계에서 종적을 감추기 시작한 때이기도 함)

주성치를 신봉했었는지조차 기억이 나지 않는 지금,

주성치가 메가폰을 잡은 영화가 개봉했다는 소식에 다시 고개를 처든 팬심.

 

주성치 탄생일이 다가오면 교내 방송에 사연을 보내고

주성치를 심도 있게 스토킹하기 위해선 자유로운 언어 소통이 필수이므로

기필코 중문과에 들어가고 말겠다고 설레발을 치고 

주성치 명찰을 여유분으로 파서 명찰 놓고온 아해들에게

무료 대여를 하던 주성치 열혈팬부심은 가뭇없이 사라졌다.

그러나 한번 타오른 팬부심은 세월이 지나도 그리 쉽게 소멸되진 않는다.

꼬깃꼬깃 바랜 팬심을 다시 꺼내들고

팬된 충정으로 닥치고 일단 보고 보는 감상몰이에 들어갔으나...

주성치가 변한건지, 내가 변한건지 호접지몽 돋는 당혹스러움.

헐리우드 블록버스터급 장대한 스케일을 무색하게 하는 

손맥풀린 주성치의 영화 세계는 너무도 초라하고 실망스러웠다.

 

예의 그 (딴에는) 반짝반짝 날카롭던 주성치의 세계관과 유머 코드가 바싹 시들어버렸다.

비디오 열 번을 돌려봐도 처음 본 것처럼 배를 잡고 바닥을 구르던 나였건만

신기 빠진 드립을 보고 있자니 심드렁해진 썩소만을 머금게 했다. 

 

예고없이 훅 들어오는 주성치 식 아재 개그,

BGM처럼 영화 전반에 깔린 슬랩스틱과 화장실 유머,

노골적인 여성 상품화와 19금 대사,

사회적 약자의 시선이 관통하는 다원적 세계관,

비급 정서를 동력삼아 만개시켰던 인간에 대한 애정까지

비급 정서의 교본으로 여겨지던 '주성치 월드'의 공식은 여전하지만

이를 봉합하는 재봉 실력은 형편없었다.

 

지루한 도입부를 거쳐 '역시 주성치야'를 연신 뇌까리며 집중 게이지가 상승되려다

"아 정말 재미 더럽게 없네'로 돌아서는 즈음해서 급물살을 타고 후다닥 종결되는 후반부.

싱겁다 못해 빡이 치는 허무함을 선사한다.

 

돈없고 빽 없어 외모마저 남루 혹은 괴상해서

괄시의 대상이 되는 비주류의 삶을 밖으로 끌어내는 데 주로 골몰하던 주성치가

이번에는 좀 더 스케일을 넓혀 천민자본주의의 민낯과 환경 문제라는 거대 주제에 칼날을 들이댔다.

 

현 중국이 직면한 휘황찬란한 고속 성장의 그늘을

신흥 청년갑부와 인어와의 순수한 사랑이라는 신파성 러브 스토리로 윤색했다. 

 

물질만능주의의 허허로움을 대변하는 청년갑부와

인간이 존립을 위해하는 범지구적 차원의 환경 문제의 심각성을 대변하는 인어의 만남.

 사랑과 자연은 물질로 치환될 수 없는, 고귀하고도 소중한 것이라는,

지나가던 개도 알만한 뻔한 주제를 전혀 주성치답지 않은 구태의연함으로 풀어냈다.

 

중국에서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흥행에 성공했다던데

관객 수준을 의심케 하는 터무니없음.

본토 반응이야 알바 아니고

웃기지도 않고, 감동스럽지도 않고, 주성치스럽지도 않은

CG 범벅의 졸렬한 태작이라고밖엔 달리 할말이 없다.

 

세상 모든 게 변하는 게 순리인거늘

주성치도 변하지 말라는 법은 없으렸다만

주성치에게서 늘 기대 이상의 것을 구하던 팬으로선 대략 난감했던 왕의 귀환.

감독욕심은 이만 집어치우고 다음번엔 꼭 은발 휘날리는 연기를 보여 주세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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