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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진·김중혁의 영화당> 10회, '원작 소설보다 나은 영화편'에서
이동진이 추천한 영화 3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2003년작이니 벌써 햇수로 십년이 훌쩍 넘은 추억의 명화.
2003년이면 나도 나름 파릇하던 이십이살 대학생 시절.
당시 큰 대중적 흥행은 거두지 못했지만 상당히 두터운 마니아 층을 형성하며 열렬히 회자되었을 것으로 추정되는,
그러나 난 아무리 기억을 파헤쳐도 그때 이런 영화가 있었나 싶은,
그런데 최근에는 재개봉까지 하며 심심한 팬몰이를 한 신고전격 로맨스 영화.
원래 관심이 없으면 들리지도 보이지도 않는 법.
일본 영화는 원체 관심도 없고 생래적 거부감이 있어
국민 일본 영화라고 해도 무리수가 아닌 <러브레터>도 아직까지 안 봤으니 말 다했다.
몇 년 전 누군가 이 영화가 그렇게도 좋다고 해서 아, 고뤠? 하며 나도 한번 챙겨봐야겠다고 점지해두었는데,
마침 <영화당>에서 다루고 있겠다, 더 이상의 미룸없이 바로 btv로 시청.
영화관에서 봤다면 누가 보건말건 왠지 눈물이 주루룩, 폭풍 오열했을 최루성 영화.
나도 저런 때가 있었지 하며 늙은이처럼 가슴 저릿저릿 공감하며 청승을 떨었다.
조제는 신체 장애로 세상과 단절된 채 할머니와 단둘이 살아가는 사회적 소외자.
츠네오는 지극히 평범한 대학생.
이 두사람이 만나 처음으로 진짜 사랑을 하고 이별하지만 지워지지 않을 삶의 한 조각으로 남아
서로를 만나기 전과는 다른 시선, 다른 사람이 되어 살아가게 된다.
만화에나 나올법한 괴상한 캐릭터와 요상한 설정으로 시작하지만
누구나 한번쯤 겪었을, 가장 일상적이고 보편적인 사랑 이야기를 하고 있다.
헤어지는 데는 다 이유가 있고 죽도록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으며
영원한 사랑이란 게 과연 현실가능한 것인지, 애초부터 불가능한 환상은 아닌지 냉소하게 되지만
각자 제갈길을 가게 되더라도 그 시간은 또렷이 남아 바래지 않는다.
아마 많은 이들이 카나에와 재회한 츠네오가 불현듯 길거리에서
서럽게 울음을 터뜨리는 마지막 장면을 최고로 꼽을텐데,
조제로부터 도망쳤지만 조제와 함께 했던 순간만큼은 진심이었을 츠네오의 사랑을 짐작하게 한다.
정상인과 다른 조제를 책임지기 위해 감수해야 했을 무게를 감당하기 버거웠을테고,
이는 장애가 아니었더라도 누구든지 저마다의 이유로 치환해볼 수 있는 헤어짐의 이유이다.
결국엔 조제를 떠났으니 비겁하다고 재단할 수 없는, 그래서 더욱 슬프다.
언젠가부터 조제가 짐스러워진 츠네오의 심경 변화를 엿볼 수 있는 대목들과
이를 눈치 채고 마음의 준비를 했을 조제의 심경이 드러나는 대사는
현실적인 연애의 수순을 먹먹하면서도 절제된 형식미로 보여준다.
츠네오 역을 맡은 츠마부키 사토시.
내 본디 니뽄 스타일 정말 극혐하는데 어쩜 이렇게 핵귀여운지.
<행복한 사전>에서 봤던 이케와키 치즈루의 앳된 리즈 시절 모습도 정말 사랑스럽다.
조제의 괴짜 같으면서 속깊은 캐릭터를 천연덕스럽게 소화해냈다.
<노다메 칸타빌레>의 그 유명한 우에노 주리가 저렇게 생겼구나 하면서 예쁘긴 존예쁘네 인정.
극중 우에노 주리가 즐겨입는 판쵸를 보면서 저때 저게 나름 유행이라
나도 일개 구매해서 시도해봤던 기억이 떠올라 추억이 방울방울.
내가 입었을 땐 영 볼썽사나워서 이건 아니다 싶어 몇번 입다 처박아버렸는데
우에노 주리가 입으니 영 느낌이 다르다.
(역시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캐릭터에서부터 스토리 전개, 결말, 분위기를 아우르는 연출
어느 것 하나 아쉬움없이 모든 게 그저 좋았던 영화.
이제 보니 일본 영화라고 무조건 저어할 것만도 아닌 게,
드문드문 챙겨 봤던 일본 영화 모두 여운이 깊었다.
은근 일본 코드랑도 맞는 것 같으니 영화 편식을 서서히 그만 집어쳐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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