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하루라도 네이버 '빵생빵사' 카페'에 출첵하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돋는다. 먹부림에 대한 집착은 생에 대한 강한 의지의 반영. 하루이틀 신문뉴스쯤이야 보지 않을 수 있지만 매일매일 '빵생빵사'의 동향을 파악하지 않는다는 것은 참된 삶의 의무를 방기하는 짓이다. 빵집 트렌드에 민감한 자라면 닥치고 접속해야 하는 빵덕후 관제센터. 전국 방방곡곡에서 발빠르게 빵집 지형도를 갱신해주는 빵덕후님들 덕분에 나름 최신 빵집 DB를 보유하고 있다고 격렬히 자부한다.
이사 오기 오래 전부터 이미 이 동네 유명 빵집 경로 탐색을 마친 상태. 현장 답사를 통한 검증만이 남아 있다. 그러나 나는 자가용 미보유자. 아무리 날고 기는 빵성지라 하여도 도보권을 벗어난 곳이라면 하등의 의미가 없다. 웹 기준으로 봤을 때 집 주변에 쓸만한 동네빵집은 없는 것으로 잠정 결론. 치아바타가 문득 생각날 때 황급히 뛰쳐 나가 길빵할 곳 하나 없다는 게 적잖이도 서글펐다. 그런데 이사온 당일, 간식 셔틀에서 돌아온 동상님 손에 들린 저것은 치.아.바.타......!!! 눈처럼 뽀얀 덧가루가 처발되고 엄청난 숫자의 기공을 함유한 고급진 양태. 이 정도면 수준급의 제빵이다. 도보권 내에 신생 빵집이 출현한 것이다!!! (눈물 좀 닦고)
다음날 빵집에 대한 애정을 맹세하려 성지 순례에 나섰는데 전혀 예상치 못한 난제에 봉착. 빵집 이름을 도통 읽을 수 없다...! 요령부득의 간판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 식별이 불가능한 폰트에 알파벳인 것까지는 좋다. 양삘내기에 경도된 나머지 우리말 표기마저 생략한 결정적 우를 범했다. 간판은 상점의 얼굴인만큼 최대한 직관적인 타이포그래피가 사용되어야 하는데 이건 뭐 제대로 읽을 수조차 없으니 어느 집 빵인지 기억에 남을 리 없다. 동상님과 머리를 맞대고 도대체 저것을 어떻게 읽어야 하냐며 발을 동동 굴렀지만 알아낼 턱이 있나. 영수증에 적힌 상호를 보고서야 겨우 가게 제목을 알게 되었다. 간판도 간판이지만 쓸데없이 길고 난해한 이름. 제대로된 간판이 붙었어도 머릿속에 쉽사리 각인되지 않았을 작명이다.
워낙 영세한 규모라 취급 종류가 많지 않지만 그래도 웬만한 기본 빵류는 다 판다. 치아바타와 곡물빵을 비롯, 오종의 무화과호밀빵을 모사한 아이템 및 구움과자류도 있다. 사실 유명세를 믿고 부러 찾아간 빵집 중에 거품인 곳이 태반. 해서 이 정도 맛이면 벌써 블로거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퍼지고도 남았을 법한데 아직 번듯한 포스팅 하나 없다. 전국에 포진한 빵덕후들이 집결했다는 빵생빵사에도 집계되지 않으니 이건 맛이 아니라 가게 이름의 문제다. 나름 뛰어난 솜씨의 알짜배기 빵집인데 진가를 인정받지 못하는 것 같아 그저 안타까운 이로서 오늘도 사장님께 면담 신청을 할 뻔 했다. 사장님, 간판만 바꿔도 떼돈 버실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