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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에 담긴 이야기라는 콘셉트는 독자 입장에서 전혀 새로울 게 없다. 그럼에도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을 집어들 수밖에 없는 것은 저자의 권위, 출판사의 신뢰도, 그리고 가장 무엇보다 양질의 콘텐츠라는 삼박자가 똑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목은 엄연히 <마음을 품은 집>이 아니라 <구본준의 마음을 품은 집>이다. 구본준이란 이름 석 자를 제목 앞에다 당당히 붙여 저자가 마음속에 품은 건축 이야기를 들려주겠노라 선언한다. 건축에 대한 저자의 깊은 애정과 조예, 그리고 언론에 잔뼈가 굵은 기자라는 이력이 어우러져 이야기 속에 탄력이 살아 있다. 그만의 관점이 양껏 녹아 있는 서사 꾸러미가 읽는 이의 마음을 웃기고 울린다.
건축은 인간이 생활에서 경험하고 활동하는 공간이다. 건축이 단순히 물리적 공간에 지나지 않았다면 세계의 수많은 아름다운 건축물들은 애초에 생겨나지 않았을 것이다. 건축의 일차적 목적은 기능을 충족시키기 위함이지만, 공간이 빚어내는 상징성과 아름다움은 정신적 감응을 일으켜 그곳에 머무르는 모두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킨다. 제일 먼저 편리함을 제공하고 인간의 예술적 욕구에 조응한 뒤, 그 어떤 논리적 수사로도 설명될 수 없는 신비로운 영역, 바로 마음을 만지는 것. 건축은 이 세 가지 단계를 관통하는 공간 미학이다.
건축에 스며든 열 여섯 개의 '사람' 이야기가 희로애락이라는 네 가지 범주 아래 묶여 있다. 사실 희로애락의 구분도 자못 식상한 데가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 진부한 구획도 그만의 서사 방식으로 다채롭게 변주된다. 가령, 시드니 오페라하우스에서는 건축주와 건축가와의 관계에 얽힌 사연을 꺼내기 위해 르코르뷔지에의 일화를 교직한다. 또 독단적 사무실 운영 방식의 표본이라 여겨지는 안도 다다오로 이야기의 포문을 연 뒤, 그와 대척점에 있는 문훈발전소 이야기로 매끄럽게 방향을 전환한다. 독자가 예상하는 이야기 그 이상을 들려주니 알이 꽉 찬 실속형 스토리텔링이 아닐 수 없다.
<세상에서 가장 작아 가장 커진 집>이라 이름 붙여진 충재 편은 조선 시대의 건축미를 가장 절곡히 드러낸다. 양용삼간을 완벽히 재현한 충재는 실로 공간 활용의 백미라 할 수 있다. 다리로 이어진 충재와 청암정은 완벽한 합일을 이루는 건축쌍이다. 극단의 미니멀리즘과 화려한 조형미가 오묘한 대비를 이루며 상호보완적 관계를 완성시킨다. 권벌은 자신의 신념과 철학을 녹여 충재와 청암정을 지었고, 공간적 규율을 통해 일상에서 배움을 실천했다. 형식 속에 감응이 생겨난다는 유교적 패러다임이 엿보인다. 특히 청암정을 바라보는 면에 벽을 쌓고 작은 창문을 달았다는 대목은 아름다움마저 아낄 줄 알았던 권벌의 절제학을 보여 준다. 단출하지만 기개가 넘치는 충재를 보면 역시 아름다움은 단순할 때 가장 힘이 세다는 생각을 한다.
십년을 경영하여 초려 삼 칸 지어내니
한 칸은 청풍이요 한칸은 명월이라
강산은 들일 데 없느니 둘러두고 보리라
송순 <십년을 경영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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