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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buff 빙의

보이스 후광의 모든 것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5. 2. 21. 10:03



위플래쉬 (2015)

Whiplash 
9.1
감독
데미언 차젤
출연
마일스 텔러, J.K. 시몬스, 폴 라이저, 멜리사 비노이스트, 오스틴 스토웰
정보
드라마 | 미국 | 106 분 | 2015-03-12



흔히 헤어 스타일이 인상의 70%를 결정 짓는 중요한 외양적 특질이라고 얘기한다. 헤어 스타일이 절대적 비중을 차지하는 시각적 단서의 조합을 통해 초벌 범주화 작업이 끝나면 발화 스타일에 의거하여 이미지 재조정에 들어간다. 목소리에 담겨진 말투와 어휘가 또 다시 세부 변수로 작용하겠으나 목소리에서 파생되는 울림은 개성을 표출하고 호감도에 밀접한 영향을 미치는 초강력 상수로 작용한다. 절세미남 베컴이 입을 열었을 때 그전까지 그를 에워싸던 빛이 일순간 멸등하는 듯한 실망감을 느껴본 이라면 누구나 동감할 것이다. 유명인을 댈 것도 없이 일상에서 노상 경험하게 되는 목소리 후광 효과의 지대함을 <위플래쉬>를 보며 통절히 되새겼다. 


실재 천재 드러머를 바탕으로 만들었다는 일종의 전기 영화. 감독의 자전적 경험을 토대로 했다는 설도 있으나 정확한 진위 여부는 알 길이 없다. 신들린 음악적 파토스보다 더욱 주목하게 만드는 제작 포인트는 탁월한 캐스팅에 있다. 마일즈 텔러와 J. K. 시몬스를 필두로 한 백전 노장과 걸출한 신예의 조합은 캐릭터 중심의 서사 전개에 완성도를 높이는 데 막대한 기여를 했다. 이들 모두 시선을 빼앗길 정도로 빼어난 전형적 미남은 아니다. 그렇다고 스티브 부세미처럼 뇌리에 각인될 만큼 인상적인 외모를 갖춘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어중간한 외모적 열세를 상쇄시킬 특수 병기가 있어야만 한다. 이들의 범인적 용모를 기인의 풍모로 격상시킨 주무기는 바로 목소리에 있다. 


목소리는 연기에 있어 대사 전달력을 완성시키는 핵심 요소다. 마일즈 텔러와 J. K. 시몬스의 목소리와 힘 있는 발성은 배우로서의 개성을 부각시키고 캐릭터의 리얼리티를 백분 살려냈다. J. K. 시몬스는 실제로 M&M's를 비롯한 TV 광고에도 출연한 전문 성우 출신이다. 중저음의 바리톤 음색과 지적인 말투에서 도저한 중후함이 배어나고 인간적 깊이를 가늠케 한다. 광기가 번뜩이지만 어딘지 모르게 절제된 듯한, 악랄하지만 결코 졸렬해 보이진 않는, 치기 어린 앙심도 음악 앞에서 내려놓을 줄 아는 광휘의 예술 호걸. 해서 제2의 찰리 파커 탄생을 위해 온갖 반륜적 처사를 일삼고 끝없는 극기 수련으로 연주자를 극한으로 밀어붙이는 악질 멘토가 은막 위에 현현했다. 


마일즈 텔러는 존 쿠삭과 엘비스 프레슬리를 묘하게 섞은 듯한 매력을 가지면서도 어느 배역이나 무난하게 소화시킬 수 있는 도화지 재목의 정석을 보여준다. 극중 J. K. 시몬스와 대립각을 세우는 장면에서도 노장에 결코 뒤지지 않는 대찬 면모와 야멸찬 연기력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뚜렷한 기승전결 없이 무대의 격정이 최고조에 이른 클라이막스에서 막이 내린다. 최근 많은 영화들의 주된 흐름이기도 하듯, 주인공이 어떻게 인생의 장해물을 헤쳐내고 종래에는 최고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는지 구구절절 구태의연한 설을 풀지 않는다. 플롯의 치밀함에 공력을 쏟는 대신 환각에 사로잡힌 듯 음악에 녹아드는 혼연일체의 순간, 무대 위에서 폭발하는 찰나의 카타르시스 속으로 관객을 삼켜버린다. 


명색이 음악 영화인데 사운드트랙이 좋은 거야 두말할 필요도 없다. 고난도 드럼 사운드가 일품인 <위플래쉬>와 <카라반> 등 전신에 전율을 불러일으키는 박동의 리듬을 스크린 밖으로 쏟아낸다. 이런 음악 영화류는 사운드트랙만 들어도 절로 신명나는 게 보통인데 이상하게 이 영화는 사운드트랙만 듣자하니 괜시리 시끄럽기만 한 것이 영화를 타고 전해지던 진동은 오간데없다. 드럼을 매개로 한 예술적 혼의 집적보다 두 주연 배우의 목소리에 반해버린 영화. 그 자체만으로 보이스 후광의 모든 것을 방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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