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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기록된 '봉 마르쉐'를 모델로, 상업 문화가 본격적으로 태동하던 19세기 프랑스 사회상을 날카롭게 포착한 소설이다. 에밀 졸라의 저작 중에서 상대적으로 밝고 가벼운 작품으로 평가된다.  


졸라는 개인의 욕망이 무한대로 조장되는 사회 및 가치가 상실된 채 철저히 경제 논리에 입각하여 작동하는 냉엄한 소비 매커니즘을 천착한다. 작가는 문제의식에서 발로한 사유의 뼈대 위에 로맨스를 양념처럼 입혀 가벼우면서 무겁지 않은 균형적 내밀성을 완성시켰다. 주인공 무레와 드니즈 간의 러브라인만 보자면 삼류 로맨스 소설의 전형으로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백화점이란 공간으로 구체화된 사회적 변혁기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새로운 형태의 소비 패턴이 욕망 창출로 이어지는 매커니즘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밀도있게 그려냈다. 이러한 작가의 비평적 사유와 치밀한 구성력은 현실성이 결여된 주요 인물들의 맹점을 충분히 상쇄시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고전으로 치부하기에는 약간 모자라다는 미진함을 지울 수 없다. 높은 호응도에 힘입어 세계문학의 호조세가 지속되면서 세계문학 시장이 더없는 활기를 띠고 있다. 하여 출판사들이 저마다 차별화된 고전 목록을 선보이며 호조 물결에 합류하는 가운데 기존에 소개되지 않았던 작품들이 새로이 고전의 범주에 편입되는 사례가 눈에 띄게 늘어났다. 이 작품 역시 그런 일례다. 사실 고전이란 딱지가 붙으면 아무리 개인적으로 함량 미달로 여겨지는 작품이라 판단되어도 무비판적으로 숭상해야 할 것 같은 의무감을 종용받는다. 식견 낮은 내가 감히 고전을 고전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냐는 자조적 논리에 흡수된다. 그렇다면 과연 고전이 무엇인지에 대한 정의가 바로서야 하는데 아직 내 수준의 문학 내공으로는 요령부득이다(그러고보면 세계문학이 어느새인가 고전에 대치되는 개념으로 고착화된 것도 이상하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이 급속도의 성장세로 주변 일대를 집어삼켜 버리는 혁명의 바람 속에서 골목 상권들은 속절없이 굴종할 수밖에 없는 운명을 맞는다. 거대 자본에 잠식됨으로써 속출한 골목 상권 붕괴는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 우리 사회에도 여전히 유효한 과제다. 세기를 넘어 동일한 문제가 미결로 남아 있음이 진한 씁쓸함을 안긴다. 현 시대를 지배하는 대부분의 상업 논리가 이미 19세기에 완성되었다고 하니 19세기를 살았던 이들의 천재성을 감탄해야 하는지, 시대를 초월한 불변의 상업 논리를 예찬해야 하는 것인지 헷갈릴 지경이다. 


페미니즘 시각에서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 있다. 이 작품의 키워드는 단연 욕망이다. 그중에서도 충족되지 않는 물욕의 굴레가 어떻게 인간의 삶을 소진시키는지 현실밀착형 인간 군상들을 통해 묘사한다. 분명 욕망이라는 심리 기제가 여성의 전유물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물질을 집요하게 갈구하는 욕망의 주체를 여성에만 한정 짓고 있다. 작품 속 남성 인물들은 주로 물욕이 아닌 다른 양상의 욕망에 굴복하는 노예로 그려질 뿐이다. 소비 사회가 여성의 허영심과 탐욕에 기초한다는 작가의 남성주의적 시각이 기저에 깔려 있다. 


내가 기대했던 바와는 판이하게 다른 분위기의 소설이었다. 이 양반 글이 굉장히 음울하면서도 기묘한 맛이 있다고 들었는데 이 작품은 묵직한 로맨스 소설 같다는 느낌뿐, 기대해 마지않았던 졸라스러움은 전혀 느낄 수 없었다. <목로주점>에서 졸라 특유의 색깔이 극명히 드러난다고 하니 일단 <목로주점>을 읽어볼 때까지 졸라에 대한 가치 판단은 보류해야겠다. 





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1

저자
에밀 졸라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12-03-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에밀 졸라 일생의 역작 ‘루공-마카르’ 총서의 열한 번째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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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인들의 행복 백화점. 2

저자
에밀 졸라 지음
출판사
시공사 | 2012-03-19 출간
카테고리
소설
책소개
에밀 졸라 일생의 역작 ‘루공-마카르’ 총서의 열한 번째 작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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