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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 새로 짜기근래 부쩍 과학기술 관련 텍스트를 온오프로 주유하며 때늦게 깨친 한 가지를 꼽으라면, 미래 사회에서 저임금 단순 노동/사무직만이 기계로 대체될 존립 위기에 처한 것이 아니라 불가침 특권 성역으로 여겨지던 고소득 전문직도 사정은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몸’을 쓰는 작업보다 되려 ‘머리’를 쓰는 직군이 고성능 인공지능 발달에 잠식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관측이 적잖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여태까진 막연히 상류 기득권층은 여전히 부와 권력을 독점해갈 것이고 힘없는 다수 대중만이 과학기술의 거대 파도 속에 휩쓸려 하릴없이 생존권을 박탈당할 것이라는 ‘피지배층 수탈 프레임(?)’으로 미래를 점쳐보았다. 그런데 관련 정보를 입수하면 할수록 사회 전 계층이 ‘혁신 바람’에 노출되어 있고 전방위로 사유의 폭을 확장시켜 사회 구조적 패러다임 자체를 새로이 설정해야 할 때임을 득도했다.
앞으로도 여전히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 구조는 존속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소수’가 미래의 ‘소수’로 이어지리란 보장은 없다. 과학기술의 발달로 전통적인 개념의 ‘직업’이 해체되고 ‘작업’의 개념으로 이전해감과 동시에 사회 전 계층을 아우르는 대변혁이 임박했다. 바야흐로 과학기술이 사회 재편에 있어 일개 변수가 아니라 절대 상수로 작용하게 될 미증유 변곡점이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열 번 찍어 안 없어지는 ‘전문직’ 없다통념상 직업은 사회 계층과 직결되고, 직업으로 분화된 계층 구조에서 소수 상류층이라 하면 으레 전문직 종사자로 치환되는 게 보통이다. 태초의 전문직은 사회 대의를 도모하는 거룩한 소명 의식에 정초했을지 모르겠으나 오늘날 전문직이라는 용어가 불러일으키는 심상은 그와 사뭇 다르다.
‘전문직’은 자고로 부와 권력을 쉽게 확보하기 위한 통과 관문처럼 여겨졌다. 국내 실정만 비추어 보아도 전문직은 소위 명문대 졸업장, 국가 고시 합격 등의 대가를 치러야만 비로소 입성 가능한 배타적 영역으로 군림했다. 해서 전문직은 기본적으로 ‘똑똑하고 돈 잘 벌고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이라는 대전제를 담지한다.
그러나 어느 새부턴가 ‘사’자 직업도 예전 같지 않게 먹고 살기 빠듯하다는 탄식이 심심찮게 들려오기 시작했다. 배부른 자의 엄살로 치부하기에는 이를 방증하는 팩트가 도처에 산재한다. 이른바 과학기술의 진보는 대중의 지식정보 접근성을 확대했고 지식의 불균형과 비대칭성이 보정되면서 전문직이 이제껏 누려오던 독점 권한이 점점 축소되고 있는 실정이다.
전문성을 갖춘 일반인 확산과 더불어 기술 혁신으로 말미암아 밥그릇의 파이(?)가 줄어듦은 물론이다. 요컨대 사회 변화에 조응하지 않는 고비용 청구 및 저퀄리티 서비스 제공이 심화되면서 전문직의 ‘가성비’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가운데 전문직 수혜자 집단은 유례 없는 도전에 직면해 있다.
이 책의 원제는 <The Future of the Professions: How Technology Will Transform the Work of Human Experts>. 국내 번역판 제목은 트렌드를 의식한 탓인지 난데없이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달고 나와 전문직에 방점을 찍는 마케팅 묘수를 쓰고 있다. 허나 책의 면면을 들추어보면 방점은 직업 전반에 찍혀 있다. 저자 리차드 서스킨드는 비단 전문직에 국한하지 않고 기존 직업 분류 및 수행 방식 자체가 전면 개혁될 것이라고 역설한다. 위기는 전문직 종사자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찾아왔다.
닥치고 나의 미래
업무 처리 과정에서 사람의 실수가 발생했을 때 가장 많이 하는 자조적 변명은 아마도 ‘사람이 하는 일이 그렇지’일 것이다. 그리고 기계로 인한 실수가 발생했을 때 가장 많이 하는 탄식은 아마도 ‘기계가 하는 일이 그렇지’일 것이다. 사람과 기계 모두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불완전한 피조물이라는 게 현재 스코어인데, 앞으로 기계가 업무 처리 능력 면에서 인간을 능가하게 된다면 대체 인간의 역할을 새로 짜여진 판 위에다 어디, 어떻게 정립해야 할 것인지 하는 실존 물음에 봉착했다.
인간 고유의 것이라는 게 과연 무엇이며, 고유의 것이 있다 한들 그것이 어떤 가치를 발휘한단 말인가? 난 전문직 종사자도 아니고 단순 노동자도 아닌, 지극히 일반적인 사무직에 몸담고 있는 일개 직장인이다. 그리고 천하 제일 박봉에 처우 개선이 시급한 상3D 업종이라 불리는 교육출판업계에 몸담고 있다. 어쩌다 이 동네로 어설프게 굴러들어와 앞으로도 이쪽 언저리에 빌붙어 생계를 해결해나가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대체불가능한 인재로 기능할 수 있을 것인가? 불확실한 미래 앞에서 이 물음만이 자명해졌고 이 책에서 임시변통 해답을 찾았다: 정신-육체-영혼을 안팍으로 탈탈 털어 트랜스폼 트리니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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