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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중독 코스프레

호모 자충수의 최후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7. 8. 20. 22:49

호모 데우스
국내도서
저자 : 유발 하라리(Yuval Noah Harari) / 김명주역
출판 : 김영사 2017.0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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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에브리바디 ‘현자타임’ 

마르크스가 그랬다. 종교가 민중의 아편이라고. 아편이 별다른 게 아니다. 우리 모두 저마다의 레시피로 제조한 ‘의미’라는 아편을 집어삼키며 매일을 견뎌낸다. 의미를 상상하는 인간이 진정한 승리자이며 의미를 구하는 삶만이 신성하다고 여태 배워왔다. 그리고 그 조류에 맞게 내 나름껏 의미지향 모드로 살아왔다고 자부했다. 그런데 유발 하라리는 이 모든 게 철 지난 ‘개소리’라고 일축하며 단순히 ‘상상된 의미’만으로도 그럭저럭 굴러가던 시대의 종언을 고한다.

그에 따르면, 의미의 원천이던 종교는 물론, 이른바 개인주의, 인권, 민주주의, 자유시장으로 압축되는 자유주의 4종 팩키지도 무참히 용도 폐기될 것이다. 따지고 보면 인간이 끊임없이 여타 동물과 ‘구분 짓기’를 하고 스스로 유별한 존재라는 ‘정신승리’가 필요했던 이유도 결국 불확실성에 내맡겨진 나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인본주의도 일종의 자존감 육성을 위한 퍼포먼스이자 한치 앞도 내다볼 수 없는 주제에 깜도 안 되는 행성 주인 행세를 했던 영장류가 택한 최후의 발악이었던 셈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우리는 유일무이한 신성한 주체로서 모든 문제의 해답은 내 안에 있다는 믿음을 셀프 주입해왔다. 그런데 나보다 더 나를 잘 아는 시스템이 있다면? 신에 대한 믿음으로 상상의 구원을 받는 게 아니라 현실 차원의 구제가 가능하다면? 형이상학적 신념이 아닌 실재에 근거한 시스템이 나를 면밀히 분석하고 선택의 갈래마다 최선의 길로 인도할 수 있다면? 그렇다면 이야기는 백팔십도 달라진다. 기존 문법을 고수해서는 결코 불확실성이 거세된 미래에 살아남을 수 없으므로 우리 모두 '현실자각타임'을 가져야 한다는 얘기다.


# 도전, 호모 데우스!

전작 <사피엔스>로 무릇 전 세계 독자를 지성과 사유의 밭으로 인도했던 유발 하라리가 <호모 데우스>를 들고 돌아왔다. ‘미래의 역사’라는 부제를 떡 하니 붙이고서 말이다. 역사란 무릇 흘러간 과거의 것을 지칭하는 게 아니던가. 그런데 미래의 역사라니 이게 웬 역설덩어리란 말인가. 그렇다. <사피엔스>로 과거를 되짚고 현재를 호출했다면 <호모 데우스>에서는 인류 궤적의 연장선상에서 미래를 점쳐본다.

아프리카에 서식하던 한낱 ‘듣보 찌질’ 영장류에 불과하던 사피엔스가 인지혁명, 농업혁명, 과학혁명을 거치면서 7만년 동안 지구의 ‘골목대장’으로 군림했고 백절불굴의 기상으로 일인자 자리를 지켜왔다. 하라리는 전례 없는 번영, 건강, 평화를 성취한 인류의 다음 목표는 불멸, 행복, 신성이 될 거라고 예측한다. 공상과학 소설에나 나올 얘기로 치부했던 얘기가 실현을 목전에 둔 현재이고 인류는 호모 사피엔스가 아닌 신격 존재, 즉 ‘호모 데우스’로 업그레이드될 것이다...정말??? 


# 시작은 창대하나 끝은 미약하리라

호모 사피엔스는 현재 인공지능-생명공학-나노기술이라는 삼두마차에 힘 입어 신이 될 채비로 잔뜩 부풀어 있다. 이 삼두마차를 작동하는 원리는 바로 알고리듬이고 이것이 미래 혁신을 추동할 절대 동력이자 인류를 호령할 전도유망한 신이 될 것이다. 어쩌면 인류는 종국엔 알고리듬에 복속될 운명을 타고났는지도 모른다. 생명과학 관점에서 인간이란 한낱 생화학적 알고리 총화에 불과하다. 알고리으로부터 배태되어 운 좋게 호시절을 누렸지만 팔자에도 없는 신이 되겠다고 발악하다 알고리이란 이름의 범을 키워 자멸할 비운의 생명체 말이다.

알고리이 득세할수록 우리는 점점 데이터로 치환되고 분절된다. 나의 존재를 논하던 자의식 따위는 사라지고 데이터만으로 설명되고 이해될 것이다. 알고리은 우리에게 호모 데우스의 장밋빛 미래를 약속한다. 이는 파우스트의 거래만큼이나 매혹적이어서 사피엔스 스스로 알고리의 은총을 받기 위해 데이터교 입교를 자처한다. 호모 사피엔스가 다른 동물들을 무참히 짓밟고 일어섰던 것처럼 데이터교는 사피엔스를 일개 개돼지만도 못한 네트워크의 미립자로 집어삼켜버릴 것이며, 사피엔스 정복은 피사로의 잉카 정복보다 더 쉽고 허망하게 끝날 것이다…

라는 시나리오가 결코 얼토당토않은 황당잡설이 아니라는 서늘함. 내가 호모 사피엔스 끝물에 태어나 우주적 규모의 데이터 흐름 속 잔물결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비루함. 아무 생각 없이 페이스북의 ‘좋아요’를 누르고 순전한 편익을 위해 구글과 아마존에 꼬박꼬박 데이터를 상납하는 내 일상의 미욱함. 이 모든 불편함을 견딜 수 있는 지점은 오로지 ‘미래는 예측 불가능하다는 것만이 예측 가능하다는 사실’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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