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초의 백화점으로 기록된 '봉 마르쉐'를 모델로, 상업 문화가 본격적으로 태동하던 19세기 프랑스 사회상을 날카롭게 포착한 소설이다. 에밀 졸라의 저작 중에서 상대적으로 밝고 가벼운 작품으로 평가된다. 졸라는 개인의 욕망이 무한대로 조장되는 사회 및 가치가 상실된 채 철저히 경제 논리에 입각하여 작동하는 냉엄한 소비 매커니즘을 천착한다. 작가는 문제의식에서 발로한 사유의 뼈대 위에 로맨스를 양념처럼 입혀 가벼우면서 무겁지 않은 균형적 내밀성을 완성시켰다. 주인공 무레와 드니즈 간의 러브라인만 보자면 삼류 로맨스 소설의 전형으로 보아도 무리가 아니다. 그러나 백화점이란 공간으로 구체화된 사회적 변혁기를 적나라하게 폭로하며 새로운 형태의 소비 패턴이 욕망 창출로 이어지는 매커니즘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 ..
텍스트의 다양성이 일정 정도 보장되는 시대를 살아감도 복된 일이다. 아직까지도 완전한 의미의 민주주의 사회는 요원한 듯 보이지만, 적어도 불온한 텍스트를 생산했다는 죄목으로 억울한 옥고의 희생자가 생겨나진 않으니 표면적으로나마 표현의 자유가 실현되고 있는 셈이다. 역사 속에서 지배 계층은 권력 보존의 도구로 금서의 영역을 존립시켜왔다. 피지배계층의 사고 프레임과 행동규범을 장악하는 데 장해물이 되는 저작물에 주로 금서란 레테르가 적용되었다. 즉, 금서의 양산은 지극히도 자의적이고 편협한 권위주의적 발상에 기초한다. 하여 '금서'라 함은 문화적 헤게모니를 둘러싼 문화투쟁을 일컫는 또다른 말이겠다. 저자는 , , , , , , 등 총 8권의 금서를 선별하여 이것들의 사회문화적 의의를 탐구한다. 8권이 탄생하..
바버라 애런라이크의 배신 3부작의 초석이라 할 수 있는 저자는 긍정만이 미덕임을 강조하는 시대적 종용 속에서 단비처럼 시원한 일침을 쏘아 준다. 구조적 실패를 은닉하고 모든 것을 전적으로 개인의 무능과 책임으로 전가하는 신자유주의 비판의 변주다. 무조건적인 긍정이 현실을 낫게 하고 상황을 진전시킨다는 맹목적 믿음을 주입함으로써 순종적인 피지배층을 양산하고자 한다. 긍정은 선, 부정은 악이라는 이분법적 프레임 속에 긍정이야말로 모든 걸 해결하는 열쇠이자 참된 사회 구성원으로 기능하기 위한 필요충분 조건임을 세뇌당한다. 자기계발서의 대다수가 기실 긍정적 사고 탑재에서부터 출발한다. 자기계발서란 장르 자체가 개인의 성공과 실패 여부를 사회구조론적 맥락에서 철저히 분리시킨 채, 개인의 태도와 노력으로 성공을 쟁..
학교 수업을 비롯한 모든 프리젠테이션의 대미는 질의 응답이다. 그러나 질의 응답 시간이 생산적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경우는 많지 않다. 좌중의 침묵으로 종결되거나, 발표자가 이미 수차례 언급한 내용을 다시금 반복하는 질문들로 듣는 이들의 짜증을 돋우는 경우도 허다하다. 질문을 보면 그 사람의 견적이 얼추 나온다. 공적인 자리에서 질문이 꺼려지는 것도 여기에 연유한다. 나의 질문이 행여나 바보같아 우스갯거리가 않을까 하는 과도한 자기 검열에 부딪힌다. 나 역시 이러한 두려움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허를 찌르는 촌철살인 질문으로 좌중을 사로잡고 싶지만, 그 방법을 몰라 고뇌하는 모든 이에게 일독을 권한다. 대화의 방향뿐 아니라 관계의 깊이까지도 뒤흔들 대화의 기술이 담겨 있다. 비즈니스 중심의 질문법이 주로 제..
뭐 좀 알아볼 요량으로 컴퓨터 앞에 앉는다. 링크에 링크를 타고 웹서핑 행진을 마치고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순간 아차 한다. 내가 뭐 때문에 컴퓨터 앞에 앉았었지? 인터넷 유저라면 누구나 한번쯤 경험하는 망각 실태다. 인터넷 세계에 발을 딛는 순간, 애초의 목적은 까맣게 잊은 채, 쓸데없는 정보들만 소비하는 비의도적 탈선이 일상에서 비일비재하게 연출된지 오래다. 목표 과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짓거리에만 몰두하는 산만함에 자괴감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니콜라스 카의 을 통해 일정 정도 죄의식을 탕감 받을 수 있다. 인터넷은 단순히 우리가 문화를 향유하고 정보에 접근하는 방식에서의 변화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이는 우리의 사고 자체를 지배할 뿐 아니라 지금까지의 인류 문명의 명맥까지도 뒤흔드는 파괴력을 지녔다. ..
지나치게 정직한 체질 탓에 생활 패턴 및 식습관의 중요성을 일치감치 간파했고, 일단 몸에 좋다면 이 한몸 마루타 삼아 무조건 실천에 옮겨 봐야 직성이 풀린다. 뭐 십장생 돋게 천수를 누리고픈 생각은 없지만, 건강을 잃어 일상이 마비되는 불상사는 원치 않으니깐. 그리고 나같은 저질 체질은 사활을 걸고 건강 관리에 만전을 기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일상은 녹록지 않다. 아무리 건강 덕후 모드를 풀가동시켜도 스트레스로 쩔어가는 몸뚱아리를 지켜낼 재간이 없다. 어떻게 하면 내 몸의 쩔은 때를 벗겨버리고 신체적 혁명(?)을 일으킬 수 있을까 하는 궁금함에 일단 읽지 않곤 배길 수 없었다. 사실 이런 류의 건강 서적은 이미 시장에서 포화 상태인데다 대중들의 상식 수준은 높아졌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읽어 보..
흔히 시공간을 초월하여 문학사에서 굳건한 위상을 지켜온 고전들의 공통점이라 하면, 인생의 모든 희노애락과 인간 군상을 담아낸 '인생의 압축판'이라는 것이다. 수백장의 페이지 속에 고스란히 투영된 인생 역정 속에서 독자들은 스스로의 삶을 반추하며 독서의 즐거움에 몰입하게 된다. 어느 장을 펼쳐 들어도 내 개인적 인생을 대입하여 몰입 가능한 감정 이입의 플랫폼. 이것이 기실 고전이 우리에게 선사하는 가장 큰 즐거움이자 '고전'이라는 지위를 획득하게 하는 필요충분 조건이다. 그렇다면 제임스 미치너의 은 한 권의 책이 독자의 품에 안겨지기까지, 지난하면서도 모험적인 출판 여정을 여실히 담아낸 '출판의 압축판'격이라 하겠다. 소설의 잉태와 생산, 그리고 독자의 소비(?)에 이르는 총체적 과정을 소설의 형식을 빌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