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 이 영화를 볼 의도가 아니었다. 난 분명 박찬욱 감독의 을 보려고 티비 앞에 앉았건만 1) 내 집 나간 무의식이 을 선택했고 2) 오프닝에 뜬 박찬"옥"을 보고 당연히 박찬욱이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봤다. (요즘 내 정신머리가 이러하다. 장기 출타하면서 방불을 켜고 나가는 건 예사고 가스불에 국을 올려놓고 찜질방에 가서 몇 시간 동안 아무 생각없이 천연덕스럽게 몸을 지지다가 집에 오는 길에 번뜩 생각이 나는 대략 그런 식. 영화 제목 하나쯤 내 마음대로 음절과 뉘앙스가 비슷한 생판 다른 걸로 대체하는 것쯤은 유도 아님) 그런데 박찬욱 영화라고 하기엔 뭔가 많이 아닌 스토리 전개에 시나브로 의아해진 뇌피셜. 미장센이며 캐릭터며 스토리며며 너무도 밋밋하고 평탄하다. 4분의 1이 넘어가도록 잔물결만 일렁이..
미국 독립 영화계의 총아, 짐 자무쉬가 낳은 2016년작. 짐 자무쉬라는 브랜드에 걸맞은 '짐 자무쉬스운' 시적 허용을 스크린에 적었다. 늘 색다른 자기만의 스타일로 팬덤과 명성을 구축해온 짐 자무쉬가 이번에는 시라는 문학 장르를 영화적으로 해석한다. '미국 뉴저지 패터슨에서 시를 쓰는 버스운전사 패터슨'이 이끌어가는 한 편의 서사시. 은 덤덤하고 나른한 평상의 리듬으로 주인공 패터슨의 한 주 일상 풍경을 반복되는 패턴으로 관찰한다. 패터슨(아담 드라이버)은 미국 뉴저지 주의 소도시 패터슨에 사는 버스운전사. 아내 로라(골쉬프테 파라하니)와 반려견 마틴과 함께 사는 지극히 평범한 저소득층 노동자이다. 매일 같은 시간에 출근해서 정해진 노선의 버스를 몬다. 근무가 끝나면 집에 돌아와 마틴을 산책시키고 단골..
90년대 후반에서 2000년 초반에 이르기까지 국내 씨네필 사이에서 의 인기는 가히 뜨거웠다. 이 영화를 좋아한다고 하는 고백은 뭐랄까... '거 쫌 영화 볼 줄 알고 음악 좀 들을 줄 아네' 하는 평균 이상의 문화소양을 나타내는 딜레탕트적 훈장 같았다. 당시만 해도 생소하게 느껴지던 이역만리 남미를 친숙하게 만들었고 정열이 넘치는 음악의 나라 쿠바에 대한 로망을 안겨주었다. BVSC의 극적인 탄생에서부터 노장 멤버들의 구비진 인생사, 그리고 그리고 만년에 찾아온 거짓말 같은 인기와 성공. 각 멤버의 인생 하나하나가 통한의 음악이자 환난도 꺾지 못한 정열의 노래였다. 1996년 영국 레코드 프로듀서 닉 골드와 미국 기타리스트 라이 쿠더는 쿠바 음악과 서부 아프리카 음악을 재발견하기 위해 의기투합했다. 이..
근 15년 전 제작된 묵은지 영화. 국내에는 이듬해인 2003년에 개봉했다. non-sci fi인 나도 대략 이해가 쉽고 크게 새롭지 않은 SF 영화. 작품의 완성도보다 주연의 빼어난 존재감이 다 한 영화. 요즘은 활동이 뜸해진 크리스천 베일의 눈부신 리즈 시절이 박제되어 있다. 얼굴이면 얼굴, 몸매면 몸매, 연기면 연기, '다 가진' 스타가 발산하는 미학적 유희. (몸짱 아니랄까봐 상체 탈의씬은 빠지지 않고 등장) 크리스천 베일은 총질과 동양 무예를 융합한 '건 카타(Gun Kata)'라는 무술 공법의 최고 유단자로서 터럭 하나 다치지 않고 다대일로 적을 무찌르는 현란한 액션 신공을 선보인다. 덕분에 이소룡보다 더 하면 더 했지 덜하지 않은, 저게 진정 가능해?라고 반문할 정도의 리얼리티 제로의 갓베일..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로베르 두아노 (Robert Doisneau: Through The Lens, 2016) 로베르 두아노는 누군지 몰라도 는 다들 어디선가 한 번쯤 봤을 것이다. 파리 감성의 정수를 담아낸 대중 기호품으로서 대량 복제되고 대중 소비된 바로 그 전설의 한 컷. 를 비롯해서 무수한 파리의 순간을 특유의 낭만과 유머로 포착, 파리지앵의 감성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기억되는 로베르 두아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저널리스트이자 손녀 클래망틴 드루디유Clémentine Deroudille가 직접 감독과 나레이션을 맡았다. 고인이 된 할아버지가 생전 남긴 예술의 파편을 모아 한 편의 근사한 '활동 사진'으로 집대성했다. Robert Doisneau (1912-1994)(© Atelier Ro..
우리는 늙음이 좌시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현대 사회에서 늙음은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나 지혜로움의 표상이 아니다.젊어서 습득한 지식과 기술이 쓸모를 잃게 되는 급변 사회에서'늙은이'란 생산성이 저하된 노동 시장의 잉여로서 배제되거나 홀대받는 게 현실이다. 쓸모의 관점에서 무용으로 취급될 뿐 아니라 미추의 측면에서도 늙음은 가급적 지연시키고 회피해야 할 숙명적 과제이다. 특히 여성은 외모와 관련된 사회적 잣대에 맞서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젊음과 동안만이 반드시 지켜내야(?) 할 아름다움의 지향점으로 숭배된다. 더군다나 돈과 시간만 충분하다면 젊음은 얼마든지 지켜낼 수 있는 정복의 대상!젊음의 유지도 돈 있는 자에게만 허락된 권리이므로노화로 시들은 신체는 추하고 미천하다는 계급적 낙인이 찍히게 된다. 이 ..
중국 음식은 미국 사회에 침투되어 본토와는 다른 식문화 스타일을 개척. 현지인 기호에 맞게 조리 방법을 보정하고특유의 단맛과 신맛이 강화시켜 뉴 스타일을 장착했다. 넷플릭스에 풍부하게 탑재된 푸드 다큐를 한 개씩 크로스 오프 중인데여지껏 제일 재밌게 본 한 편을 고르라면 단연 미국화된 중국 음식의 절대 아이콘, 제너럴 쏘 치킨 (General Tso's Chicken)의 기원과 문화적 함의를 추적하는 다큐. 제너럴 쏘 치킨은 미국인이 가장 만만하게 즐겨먹는 중국 음식이자거의 모든 중국 식당에서 내놓는 빼박 메뉴다.그 표기 방식도 조립 방식도 제각각.발음도 초우인지, 쏘우인지 말하는 사람 마음대로.제너럴 쏘가 실재 인물이긴 한건지제너럴 쏘와 치킨과의 연관성은 대관절 무엇인지그 면면을 유쾌하게 들여다본다. ..
공들여 다운 받아놓길 몇 번, 그런데도 선뜻 클릭이 가지 않아 휴지통에 버리기를 반복. 괜스레 또 아쉬운 마음이 들어 놋북에 넣어두었다가 돌연 변심하고 내다버리는 뻘짓을 하기 전에 이번에는 무조건 보자고 작심하고 시청. 좀만 보다 노잼이면 집어쳐야지 했는데 순식간에 서스펜스 볼텍스 안으로 빨려들어감. 하, 뭐 이런 괴물 같은 영화가 다 있는 거냐... 진작에 보지 않고 처박아두었던 나를 무심히도 책망하게 하는 '미친' 영화. 이 영화는 그냥 명작이 아니라 초특급 수작이다. 죽기 전에 꼭 볼 영화 리스트에서 이 영화가 빠진다면 선별 방식에 필경 오류가 있는 게다. 알콜 중독에다 추악하게 늙은 퇴물 여배우 제인 역의 베티 데이비스.그리고 불의의 사고로 반신불수가 되어사악한 언니 제인으로부터 학대 받는동생 블..
내 본디 정신연령이 유치하여 만화 덕심이 유별하다는 걸 차치하고라도 이 영화를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이유는 1. 개님 2마리가 주인공 2. 개님 1의 목소리를 루이 C.K.가 맡음 3. 개님 2의 목소리를 에릭 스톤스트릿이 맡음 하나 더 굳이 꼽사리로 덧붙이자면 4. 제작진이 만들었으니 재미없을 확률이 극도로 희박하리라는 맹목적 신봉이 깔려 있다. 주인공 캐릭터와 목소리 합체율이 100%에 육박하는 천부의 하모니. 루이 C.K.보다는 홀쭉하지만 희끄무레 어리뻥뻥한 이미지를 쏙 빼닮은 맥스와 볼륨으로 치자면 애완견 버전 에릭 스톤스트릿이라 해도 전혀 무리가 없는 듀크의 투톱 주연. 주연 못지 않게 묵직한 존재감을 과시하는 조연 출연진의 목소리도 헐리웃 유명 배우들로 온통 도배. 기젯 역의 제니 슬레이터 /..
차가운 온도가 감득되는 담박한 이탈리아 영화. 남일일 때는 흑백논리로 명백하던 윤리적 신념이 당장 내 일로 닥쳤을 때에는 얼마나 무력하게 굴절될 수 있는지 덤덤하게 응시한다. '그럴 의도가 전혀 없었던' 우발 범죄를 저지른 타인과 그를 직업적으로 변호하는 자를 비난하기란 너무 쉽지만 만약 내 자식이 바로 그 살인자가 된다면 그때에도 날선 비난과 도덕젓 잣대를 일관성있게 들이댈 수 있는가 하는 도덕적 모호성을 개입시켜 인간의 이중성과 위선을 적발한다. (원제 는 영어로 Our Children을 의미한다.) 영화를 본 다수의 관객들이 입모아 얘기하듯 성급한 듯 급작스러운 열린 결말. 내가 저 상황에 놓혔다면 과연 어떤 액션을 취했을까를 고민하는 사이 충격적 사고를 암시하는 굉음과 함께 막이 내린다. 주연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