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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buff 빙의

Through The Lens_로베르 두아노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7. 10. 3. 09:38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 

로베르 두아노 (Robert Doisneau: Through The Lens, 2016)


로베르 두아노는 누군지 몰라도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는 다들 어디선가 한 번쯤 봤을 것이다. 파리 감성의 정수를 담아낸 대중 기호품으로서 대량 복제되고 대중 소비된 바로 그 전설의 한 컷. <파리 시청 앞에서의 키스>를 비롯해서 무수한 파리의 순간을 특유의 낭만과 유머로 포착, 파리지앵의 감성을 대표하는 사진작가로 기억되는 로베르 두아노의 삶을 다룬 다큐멘터리. 저널리스트이자 손녀 클래망틴 드루디유Clémentine Deroudille가 직접 감독과 나레이션을 맡았다. 고인이 된 할아버지가 생전 남긴 예술의 파편을 모아 한 편의 근사한 '활동 사진'으로 집대성했다.  




Robert Doisneau (1912-1994)

(© Atelier Robert Doisneau 2014)


두아노는 '엽서 사진작가'라는 프레임에 갇혀 예술가적 가치를 축소당하기도 한다. 엽서에 사용될 정도의 소구력은 갖췄지만 유명 박물관/미술관/갤러리에 전시될 정도의 '고퀄'은 아니라는 경시의 시선으로 두아노를 평가절하하는 견해가 바로 그것이다. 그러나 두아노 작품 자체가 저열해서라기보다 기호품처럼 대량 소비되며 미학적 순수성이 소실되는 맥락에 기인한다고 보여진다.

 

파리 외곽의 노동자 가정에서 태어나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계모 밑에서 충분한 사랑을 받지 못한 채 자랐다.불우했던 성장 시절과 달리 두아노의 작품은 대체로 따뜻하고 로맨틱하다. 범인들의 소소한 일상 속에 사소한 유머가 살아 있으며 시선을 고정하는 '무언가'가 있다. 어떻게 이런 기발한 찰나를 담아낼 수 있었을까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절묘함이 있다. 고고관찰자로서 고압적인 권력 행사하기보다 평상의 순간을 함께 호흡하길 바랬던 두아노의 '태도'는 필터처럼 그의 사진 마다마다 입혀져 있다. 피사체와의 적당 거리를 유지하면서 무심하지만 그들 속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어 눈높이를 맞추고자 했던 사진작가의 낮은 자세와 다정다감함이 녹아 있다.


두아노의 사진이 그저 가볍고 유쾌한 것만은 아니다. 샅샅이 뜯어보면 어쩌다 우연히 재수 좋게 렌즈에 걸려든 게 결코 아닌, 철저한 계산이 깔려 있지 않고서는 불가능했을 '이야기'가 담겨 있다. 한 장의 사진 곳곳에 맥락적인 정보가 기민하게 배치되어 있어 이를 연결시켜 나가다 보면 어느덧 하나의 이야기로 완결된다. 이는 곧 표면적으로 보기에는 두아노가 단순하고 경쾌명료한 예술가로 비춰지지만 실은 그 이면에 엄청난 의식적인 노력을 하던 입체적인 인물이었다는 지인의 술회와도 맞닿아 있다. 작품은 작가를 따라간다고 두아노는 유쾌한 듯 암울한, 단순한 듯 복잡한, 가벼운 듯 무거운, 자연스러운 듯 치밀하게 연출된 홀로그램의 묘수를 두는 일가견이 있었고 고스란히 작품 속에 응고되었다. 


두아노는 흔히 평생 파리에 머무르며 흑백 사진만을 주로 찍은 사진작가로 오인되는데 활동 시기 동안 해외 촬영도 간간히 했으며 컬러 사진도 무릇 남겼다. 그 대표적인 예가 1968년 미국 팜스프링스 촬영작이다. 당시 모두가 히피 일변도의 사진을 토해낼 때 두아노만은 대세에 굴하지 않고 '가장 미국적인' 단정하고 클래시컬한 풍광을 포착하는 데 몰두했다. 이는 자신이 좋아하는 삶의 면만을 골라 편집한다는 그의 확고한 예술관에 정초한다. 


두아노는 훌륭한 사진작가가 되기 위한 선결 조건으로 호기심, 반항심, 인내심을 꼽았다. 세상을 궁금해 하지 않는다면 애당초 발품 팔아 사진을 찍으려 하지 않을 것이고, 아무리 셔터를 발빠르게 눌러댄들 독자적인 관점과 인사이트가 부재하다면 각이 있는 사진이 나올 리 없다. 그리고 '작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는 말처럼 일희일비 하지 않고 꾸준히 자신만의 정체성을 찾기 위해 정진하는 자만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사진을 남길 수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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