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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ing Well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7. 8. 27. 12:55




우리는 늙음이 좌시되는 시대를 살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늙음은 더 이상 존경의 대상이나 지혜로움의 표상이 아니다.

젊어서 습득한 지식과 기술이 쓸모를 잃게 되는 급변 사회에서

'늙은이'란 생산성이 저하된 노동 시장의 잉여로서 배제되거나 홀대받는 게 현실이다.    


쓸모의 관점에서 무용으로 취급될 뿐 아니라 

미추의 측면에서도 늙음은 가급적 지연시키고 회피해야 할 숙명적 과제이다.


특히 여성은 외모와 관련된 사회적 잣대에 맞서야 하는 이중고를 겪는다.

젊음과 동안만이 반드시 지켜내야(?) 할 아름다움의 지향점으로 숭배된다. 

더군다나 돈과 시간만 충분하다면 젊음은 얼마든지 지켜낼 수 있는 정복의 대상!

젊음의 유지도 돈 있는 자에게만 허락된 권리이므로

노화로 시들은 신체는 추하고 미천하다는 계급적 낙인이 찍히게 된다. 


이 모든 걸 논외로 하더라도 

늙음이 대체로 추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이유는 

스스로 만면의 의식적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나이가 들수록 꼰대가 되는 것은 인간의 숙명적 가소성이기 때문이다. 


낼 모레 백세를 바라보는 아이리스 아펠은

미국 패션계의 오리지널 아이콘이자 라이프스타일 인플루언서로 활동하며 

사회문화적으로 가공할 만한 파급력을 행사할 뿐 아니라

늙음에 둘러싼 온갖 그릇된 사회적 통념과 관습적 시선을 타파한다. 


넷플릭스로 처음 알게 된 아이리스 아펠. 

(주변 권유에도 불구하고 그간 시청을 미뤄온 이유는 

사실 썸네일로 보이는 할머니의 얼굴이 너무도 매력적이지 않았기 때문) 

1921년생 출생으로 본업은 인테리어 디자이너.

백세노인이라고는 도무지 믿기 힘든 총기 가득한 눈망울과 아우라로

아름다움의 패러다임을 전복한다. 


아흔을 훌쩍 넘긴 호호 할머니가 

이리도 당당하고 우아하며 매력적일 수 있다니!

결코 아무나 소화하기 힘든 난해하고 현란한 패션 스타일도 

척척 걸쳐내는 과감무쌍한 인간 아방가르드! 


걸걸한 목소리에 결기와 총기가 서려 있고 

정신은 이보다 더 또렷할 수 없다. 

21년생 치고는 상당히 젊어 보이는 용보.

멘탈에 활력이 가득하니 신체도 건강할 수 밖에 없으니

이건 그냥 살아 있는 노익장이다. 


생명공학 발달이 얼마나 신체 노화를 지연시킬 수 있을지 모르지만 

정신 노화를 늦추는 명약 한 가지만큼은 확실하다. 

바로 궁극의 호기심!

아이리스 아펠은 마르지 않는 왕성한 호기심으로 

세상을 끊임없이 애정하며 존엄을 지켰고

그 결과 변화의 풍랑 속에서도 

돛을 단 듯 위엄 차고 유연하게 순항할 수 있었다. 


아펠이 동시대인들에게 큰 본보기가 되는 지점도 

바로 그녀가 지향하고 실천하는 이러한 삶의 '애티튜드'이다. 


본인 스스로도 고백하길

자신은 예쁘지 않았고 예쁘지 않다는 걸 자각했기 때문에 

외면의 아름다움을 지켜내는 한편, 

내면을 보다 단단하고 매력적으로 가꾸는 것으로

삶의 방향성을 결정하고 실천했다. 

그리고 이는 오히려 나이가 들수록 

그녀를 더욱 빛나고 돋보이게 하는 나침반이 되었다. 


아이리스가 이렇게 곱고 멋스럽게(?) 노후를 맞이할 수 있었던 데에는 

항상 그녀 옆에서 무조건적인 사랑과 지지를 보내던 

배우자 칼 아펠의 힘이 컸다. 

아이리스가 이상적인 나이듦(?)의 아이콘이라면 

칼은 모든 여자라면 꿈 꾸지 아니할 수 없는 

초이상적인 배후자의 전범을 보여준다. 


아무리 자아가 튼튼하고 자존감이 높다 한들

결국 자아라는 건 타자에 좌우될 수밖에 없는 상호의존적 개념.

이렇게 껌딱지 팬처럼 곁을 보좌하며 

부모 못지 않은 하해와 같은 도량으로 

한평생 아내를 사랑하고 존경하는데 

어떤 여자가 자신감을 잃을 수 있단 말인가!

칼은 다큐 제작 이후 2015년 사망했다. 


나이 먹어 좋을 건 1도 없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딥 한숨)

애초에 인간으로 태어나 늙음을 피할 수 없는 거라면

걸크러쉬 아이리스 아펠처럼 

우아하고 당당한 태도로 늙음에 대처(?)할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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