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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ovie buff 빙의

<질투는 나의 힘>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9. 2. 21. 14:04


원래 이 영화를 볼 의도가 아니었다. 난 분명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을 보려고 티비 앞에 앉았건만 1) 내 집 나간 무의식이 <질투는 나의 힘>을 선택했고 2) 오프닝에 뜬 박찬"옥"을 보고 당연히 박찬욱이라고 생각하고 영화를 봤다. (요즘 내 정신머리가 이러하다. 장기 출타하면서 방불을 켜고 나가는 건 예사고 가스불에 국을 올려놓고 찜질방에 가서 몇 시간 동안 아무 생각없이 천연덕스럽게 몸을 지지다가 집에 오는 길에 번뜩 생각이 나는 대략 그런 식. 영화 제목 하나쯤 내 마음대로 음절과 뉘앙스가 비슷한 생판 다른 걸로 대체하는 것쯤은 유도 아님)


그런데 박찬욱 영화라고 하기엔 뭔가 많이 아닌 스토리 전개에 시나브로 의아해진 뇌피셜. 미장센이며 캐릭터며 스토리며며 너무도 밋밋하고 평탄하다. 4분의 1이 넘어가도록 잔물결만 일렁이며 박찬욱 시그니쳐가 1도 보이지 않는 까리까리한 상태가 지속되자 밤마다 실천 중인 스마트폰 프리 모드를 잠시 끄고 검색을 해보니 하, 박찬'욱'이 아니라 박찬'옥' 감독 작품이었네. 라섹을 했대도 저 멀리서 'ㅜ' 와 'ㅗ'를 식별할 정도의 시력은 아닌 게다...


뭐 어쨌거나 한국 영화 연대기에서 나름 유명한 영화고 2000년대 초반이 삭제된 내 한국영화 DB를 채우기에 손색 없는 작품이니 일단 끝까지 봤다. 젊어도 너무 젊은 박해일과 문성근과 배종옥과 서영희. 말도 안되게 핵젊다...! 어색하고 오글거리는 연극 톤의 대사와 여물지 않은 듯한 박해일과 서영희의 연기. 삼각 관계가 또다른 삼각 관계로 이어지며 가해와 피해로 얽히고설킨 사랑이라 믿는 관계에 대한 단상들. 질투로 맺어진 박해일과 문성근이 마치 아버지와 아들처럼 상호보완적인 불가분의 관계로 발전하는 인생의 부조리. 

 

영화에 새겨진 알레고리며 아날로지며 심오하게 파고들 정도로 인상 깊지는 않았고 난 그저 2000년대의 향수를 자극하기에 충분한 그때 그시절의 풍경만으로도 충분했다. 내 기억 속 2002년보다 훨씬 더 촌스럽고 미개(?)한, 그러나 뭔가 코끗 짠하게 저땐 참 어렸었는데 저때로 돌아가면 어떨까를 하릴없이 상상하게 하는 17년 묵은 타임 캡슐. (TTL과 주연테크컴퓨터라니!!)


대학교 2학년 때 저렇게 촌스럽게 옷을 입었었나 (배종옥의 사자머리를 보니 이때 커트 머리에 세미힙합 바지를 입던 흑역사가 떠오른다) 컴퓨터 모니터는 뚱뚱하고, 출판업계는 대략 이때까지는 먹고 살만하던 호시절이었고, 우리나라는 지금과는 비교가 안되게 여전히 후진에 미개발이었다.


이 당시 박해일은 뭇여자들이 바라마지 않던 취저 이상형으로 손꼽히던 촉망 스타였는데 그때는 전혀 공감하지 못했으나 이제서야 박해일 신드롬 이해. 한국영화를 도통 보질 않았으니 박해일이 이렇게 아름다웠었는지 알 턱이 있나! 아따 진짜 자알 생겼네. ㅇㅈㅇㅈ. 서영희는 캐릭터 자체가 참 찌질하기도 하지만 정제되지 않은 연기 너무 과해서 보기가 힘들었다. 아무리 캐릭터 자체가 불쌍하고 구질구질한 거라 쳐도 두눈 뜨고 보기 어려운 오버더탑 퍼포. 그래도 이 언니 모태 미녀는 맞네.


개중 위너는 갓성근. 쪼인트 까고 싶은 유들유들 저씨 연기는 문성근옹이 가히 원탑이다. 꼰대 편집장에 부정하지만 능력 있는 위선적 가장 모습은 연기라기보다 리얼이다. 적어도 문체를 씨부리려면 Saul Bellow 레벨은 되어야 한다고 토로하던 문성근옹을 뜻을 받들어 그간 귀동냥으로만 친숙했던 Saul Bellow의 책을 읽어야겠다고 고무되어 다음날 바로 도서관을 찾았지만 어쩜 소장 도서들이 하나같이 다 더러워서 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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