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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맛 다이어리

본말전도의 현장 포착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5. 8. 14. 20:44

올해도 어김없이 유아교육전이 코엑스에서 열렸다. 애 키우는 것도 아니고, 유아 교재를 만드는 것도 아니지만 얇고 넓게나마 교육 업계 돌아가는 판국을 알아서 나쁠 건 없다 해서 일단 사전 등록. 아침이 밝아오니 무섭게 휴일맞이 먹부림을 마치고 잠시 지인과 교분을 나눈 뒤 일어서니 오후 4시. 6시면 행사가 종료되니 나에게 허락된 시간은 2시간. 부스마다 엉덩이 붙이고 앉아 상품을 요리조리 뜯어보고 직접 체험해볼 생각은 애당초에 없었으니 주마간산 격으로 휙 둘러보고 오겠다는 원 취지에 최적화된 제한 시간이다.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사방에서 쏟아지는 '어머님' 세례. 니 이 사람들이! 내가 대체 어딜 봐서 어머님이야 하며 발끈했지만, 애 둘은 놓고도 남을 나이니깐 어머님 소리 듣는 게 이상할 게 전혀 없구나 하며 시무룩. 유교전을 찾는 여성 방문객이 모두 자녀를 둔 엄마일 거라는 이 후진 공식은 대체 어디서 비롯되는 것이가. 왜 꼭 엄마만이 유아 교육에 관심이 있을 거라 생각하지? 자녀 유무와 상관없이 업계인 또는 단순 일반일수도 있는 건데 밑도 끝도 없이 어머님이라고 명명하며 부비부비 들이대는 통에 무표정 쌩까기로 맞대응.

 

참가 기업들의 주목적은 상품 홍보 및 브랜드 인지도 제고에 있지만 특별 할인가로 매출 항샹의 득도 보고 이참에 재고도 소진하려는 셈도 깔려 있다. 그러니 '어머님'의 지갑을 열게 하는 것이 현장의 성과율과 직결되는 궁극적인 달성 목표다. 대뜸 '어머님'이라고 던져보고 이에 반응하는 고기만을 필터링해 월척하겠다는 계산적인 의도는 아닌지 추정하게 된다.

 

임시공휴일이 붙은 연휴 아닌 연휴라 예상했던 것보다 저조한 트래픽. 그래도 과연 인간이 많긴 많다. 유모차를 끌고 총출동한 부모들이 바글대고, '우리 애만큼은 제일 좋은 걸 해주고 싶다'는 자녀애에 호소해서 실적을 올리겠다는 직원들의 영업질이 범람한다. 그와중에 유모차가 무슨 구급차인양 사방을 휘두르고 사람들 보는 매대에 떡 하니 지가 산 상품을 올려놓고 내용물 확인을 한다거나, 통제 불능의 아이를 야단치지 않고 묵인하는 등 개념없는 일부 부모들 작태에 기함했다. 공공장소에서 지켜야 할 기본 예절도 갖추지 못하고 본인에게 저렇게도 '관대하신' 부모가 한글 한 자, 영어 한 자라도 더 가르쳐보겠다고 교재나 유아용품을 뒤적이며 애면글면하는 꼴이 한심하다 못해 애석하다.

 

자녀 교육에 이렇게 열과 성을 다해 목숨 바쳐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남들 다 하는 거니 우리 애도 당연히 해줘야 하는 게 부모된 도리이고, 가랑이를 찢어서라도 최고(라고 여겨지는) 상품을 소비해서 자식 앞에 바쳐야 일등 부모, 좋은 부모라고 선전한다. 교육은 소비로 체현되고 소비가 곧 자식 사랑을 평가하는 바로미터가 되었다. 교육열 높은 부모에게 양질의 정보를 제공하는 현장이라기 보다, (매년 이런 동종 부류의 전시회를 갈때마다) 육의 본질은 휘발되고 천박한 물신주의만이 남은 소비 시장의 쓴물만을 보았다.

 

교육이란 게 생활하는 데 지장없는 '인간다운 인간'으로 키우기 위한 기회를 제공하는 거라면, 그 기회가 꼭 상품 소비로 치환되어 이루어진다는 발상은 용도폐기되어야 한다. '교육'을 팔아 밥 벌어먹고 사는 사람으로서 할 소린 아니다만, 나도 내 애가 생기면 또 달라질려나. 난 그저 삼시세끼 밥 안굶기고 사랑은 아낌없이 주되, 그냥 천혜의 자연 초원에서 자유롭게 자라나는 방목 소들처럼 그냥 '지 알아서' 크게끔 방임해야지. 그리고 될성부른 애는 뭘 해도 되고, 싹수가 노란 애는 뭘 해도 안 된다. 그냥 평범하게만 자라도 고마워 할 일이니 오바 말고 기본 매너나 탑재시키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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