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Outliers: The Story of Success (Mass Market Paperback)
외국도서
저자 : 말콤 글래드웰(Malcolm Gladwell),Gladwell, Malcolm
출판 : Hachette 2009.06.01
상세보기



지금은 고인이 된, (모든 죽음이 그러하지만 유독 비통한) 

신해철이 청년을 상대로 한 어느 강연에서 이런 말로 운을 뗐다.

세상은 본디 불공평하며 인생은 노력이 아니라 운이라고.

그 말이 맞다.

생판 처음 듣는 얘기도 아니거늘 그 워딩이 머리에서 떠나지 않았던 이유는

다른 사람도 아니고 마왕의 입에서 적나라한 진실(?)을 들었기 때문이다.


평소 마왕의 캐릭터을 생각하면 그렇게 놀랄 일도 아닌데 공적인 자리에서 너무 대놓고 초장부터 

청년들의 희망을 짓밟는 게 아닌가 해서 혼자 심쿵.

(강연을 끝까지 보진 않아 어떤 식으로 논지를 마무리했는지는 모름)

마왕의 음성으로 증폭된 진실의 무게가 너무도 큰 나머지

운없(을지도 모르)는 인생을 살고 있다면, 

이를 어떻게 감당해야 하는 것인가 한동안 번민했다.

(귀찮아도 강연을 끝까지 볼 걸 그랬어)


주변만 둘러봐도 뭘 해도 안 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뭘 제대로 안 하는데도 인생이 술술 풀리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인생의 주인은 나라고 세뇌당하며 살아오지만 

인력으로는 도저히 거스를 수 없는 운명의 손바닥 위에 있을 뿐이다.

그저 유한한 시간을 의미로 치장하며 

끊임없는 자기 탐색으로 보다 '나은' 길을 모색하고

불가항력에 순응하는 게 속 편하다.

(이래서 내가 점점 명리에 끌린다는)


인생이 운과 우연이라는 생활 철학을 

보다 통계과학적인 사례를 들어 구체화시킨 자가 여기 있다.

캐나다 출신의 학자/작가 말콤 글래드웰.


글래드웰 하면 2000년대 초반 <티핑 포인트>, <블링크> 등의 베스트셀러로 

이미 전세계적으로 두터운 독자층을 확보한 파워라이터다.

기억에 두 권 모두 원서로 읽었던 것 같은데 무슨 내용인지 1도 생각 안 난다.

그 두 권 읽고 이 사람 책은 다신 읽지 말아야지 했던 것만은 분명하다.


이상하게 아무리 좋은 책이라도 

국내 자기계발/경영 부분에서 베스트셀러로 올라 

하나의 현상처럼 소비되면 읽기가 싫어진다.

거지 같은 콘텐츠를 그럴싸하게 포장해서 

우매한 대중을 눈속임하는 책들을 너무 많이 봤다.

아마 당시에도 하도 회자가 되는 책이라 챙겨는 봤지만

으레 '속 빈 강정'이겠구니 하며 삐딱한 시선으로 술렁 넘겨봤던 것 같다.


회사 서가에서 가볍게 읽을 책을 찾던 중 만만한 볼륨감과 익숙한 타이틀로 집어든 <Outlier>.

국내에서도 2009년 동일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이미 넘들은 다 읽은 책이지만 이제사 숙독하고선 경이에 차 혼자 탄복.

글래드웰의 글솜씨는 정말 흠좀무다.

주제와 전혀 상관없는 이야기로 독자를 후킹해서 주제에 도킹시키는 이 경천할 필력.

이렇게 글 잘쓰는 사람인데 먼말하는지 모르겠다며 

내용 숙지도 못한 주제에 다짜고짜 디스했던 우매함을 성찰했다.


Outlier

ⅰ something that is situated away from or classed differently from a main or related body

ⅱ a statistical observation that is markedly different in value from the others of the sample

책에 적시된 아웃라이어의 정의.

풀이뜻과 단어에서 풍겨오는 심상은 알겠는데 짝패가 되는 우리말을 찾자니 난감하다.

'난 사람' 정도가 최선으로 생각됨.

이럴 땐 그냥 어설프게 굳이 번역을 하느니 '아웃라이어'라고 하는 편이 현명하다.


빌 게이츠, 빌 조이, 비틀즈 등의 세기의 메가 아이콘의 성공 비밀은 과연 무엇인가?

과연 개인의 탁월한 타고난 능력과 노력만으로 이들은 역사에 길이 남을 이정표를 세웠던 것일까?

글래드웰은 단호하게 이런 순진한 통념을 부정한다.

그는 인생이 순전히 자기 노력의 등가물이라는 메리토크라시에 반기를 들며

자수성가 self-made라는 신화적 개념을 해체한다.


그에 따르면 성공이란 운, 문화, 세대 등 지극히 자의적인 우연의 요소들로 

합의 도출되는 유기적 결과물이다.

즉, 유의미한 결정 인자들에서 비롯된 크고작은 '기회'들이 응축되어 

한 방의 성공으로 가시화되는 것이다.

성공은 개인의 통제로 얼마든지 성취 가능한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알맞은 때, 알맞은 가정, 알맞은 민족성, 알맞은 문화 등등

개인의 삶을 관장하는 복합 요인이 한데 뒤엉킨 최종 산물이다.


예컨대, 캐나다의 걸출한 아이스하키 선수들 가운데 

1분기, 즉 1,2,3월생이 특히 많은 이유는 지극히 우연적이고 단순하다.

유소년 아이스하키 리그의 선발 컷오프라인이 다름 아닌 1월 1일이기 때문이다. 

성장 역학이 가장 활발한 유년 시절에 석달이나 앞서 훈련과 준비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발육 상태가 월등해질 수 밖에 없고

이런 선수들이 능력을 인정받아 계속 기회를 잡게 되는 양극화로 이어진다.


한편 시대를 잘 타는 것 역시 아웃라이어 탄생에 반드시 필요한 배경환경이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둘 다 IT 산업이 태동하는 적시를 타고나 

끊임없이 앞서나갈 수 있었던 환경적 '버프'를 받았기 때문에

비즈니스 타이쿤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그러니 빌 게이츠 자서전을 아이에게 던져주며 

이것 봐라, 너도 이렇게 똑똑하고 (죽어라) 열심히 노력하면 

이렇게 성공할 수 있다고 말하는 부모가 있다면,  

그 자식이 성공할 확률은 대략 제로.

오로지 성공이 개인의 노력 여하에 달려 있다고 맹신하는

아둔한 부모 밑에서 자랐기 때문에 그 아이는 결코 빌 게이츠는 커녕, 

빌 게이츠의 발끝 때에도 미칠 턱이 없다.


그 밖에도 저자의 이론을 뒷받침하는 사례들로 빼곡하다.

운과 우연으로 빚어진 기회의 유무가 초반에는 작은 차이를 만들 뿐이지만

그 작은 앞서나감이 기회를 만들고

만들어진 기회가 더 큰 도약의 시발이 되면서 가시적인 성공을 이끌어낸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감히 추월하지 못할 수준의 

비약적인 도약을 성취한 자가 궁극의 아웃라이어인 셈이다.


글래드웰은 운이라는 것을 성공에 영향을 미치는 일련의 변수 중 하나로 열거했지만

비상한 두뇌, 능력, 민족성, 성별 등의 타고난 유전자를 포함,

시대·세대·문화 등등 기타 환경 인자들 죄다 

개인의 통제 범위를 벗어난 신적 영역이므로 '운'이라는 개념으로 퉁쳐볼 수 있겠다.

그럼 대관절 운없는 사람은 어쩌란 말이냐는 침통의 포효를 할 법도 하겠다만

운이 10할이 아니고 8할이라는 데 (쓸쓸히) 방점을 찍으면 된다.

기회가 나를 따라와도 이것의 가치를 발견하지 못한다거나 

역량이 달려 제대로 가꾸지 못한다면 성공은 언감생심이다.

말인 즉슨, 운이 성공의 막대한 지분을 차지하는 것은 명약관화하지만

개인의 노력 여하에 따라 좌우되는 측면도 분명 존재하므로

자기 계발이 하등의 무용한 것은 아닌 게다(라면서 한숨이 절로).

(사실 성공이 재력의 등가 개념은 아니지 않는가.

아웃라이어가 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 사람의 인생이 저열하다고 재단할 수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다시 명리를 파야겠다는 깔때기 결심)


저자의 주장이 통계적으로, 사례적으로 신뢰할 수준의 신빙성과 타당성을 확보한다고 해도

부의 양극화가 극심해지는 작금의 현실을 상기할 때, 

액면가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참으로 개탄스럽다.

기회라는 게 사실 자본에서 비롯되는 디딤돌이고

기회를 창출할 최소한의 자본마저 원천 박탈당한 저소득 하층 계급이 

주류에서 탈각되는 현상은 심화될 것이다.  

자본이 자본을 낳는 무적의 사이클 속에서

소수의 독점 자본층이 그들만의 성역을 공고히 하는 

배타와 수탈로 점철된 암울한 미래가 그려진다.    

어쨌거나 개인의 선천적 능력/재능이나 후천적노력이 

결코 상수가 아니라 변수라고 역설하며 

주류 담론을 비틀었다는 데 이 책의 주효함이 있다. 




당연히 백인일 거라 짐작했는데 나의 속단을 뒤집는 글래드웰의 민족성.

얼마 전 Munk Debate의 <Progress>에 출연한 그의 실물을 보고 핵깜놀.

자메이카 혈통이라 그런지 일반적인 잣대로 범주화하기 힘든 혼종 비주얼.

서양과 동양을 가늠하기 어려운 무국적 바이브.

geek 같은 외모에 자못 여성스러운 말투.

미치광이 괴짜 과학자 같은 외양으로 청중의 시선을 집중시키고 

논리 정연하고 차분한 의견 개진으로 청중을 설득한다.

어쩜 이리도 자기 글과 똑닮았는지 

어느 한 구석 평범할 데 없이 스타일이 통통 살아 있다.


저작물에서 선명하게 발산되는 학문 방향성. 

변방 출신답게 주류 프레임을 격파하고 

무비판적으로 답습하기 쉬운 타성의 관점에 맞서

이를 낯설게 하기 위한 학문적 활동을 다방면으로 펼치고 있다.

팟캐스트 <Revisionist History>란 프로도 진행한다.

꽤나 재미지게 업로드한 건 다 챙겨 들었는데 

작년 여름을 기점으로 업댓되지 않고 있다.

왕성한 학문욕과 혁신 도전에 이글대는 이 아저씨 

내가 한눈 파는 사이 고새 딴 우물을 파고 있나... 

'활자 중독 코스프레 ' 카테고리의 다른 글

Burning the Page  (0) 2017.05.07
'명리'로 인생을 내비  (0) 2017.02.04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 하는 vicious cycle  (0) 2017.01.23
독자 교정 입봉  (0) 2016.09.27
앨버트 샘슨 신드롬의 서막  (0) 2016.09.04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