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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중독 코스프레

So 90s, But Timeless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7. 8. 20. 22:40

엔트로피
국내도서
저자 :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kin) / 이창희역
출판 : 세종연구원 2015.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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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이나 음악만 유행을 타는 것이 아니다. 학문 이론도 유행을 탄다. 내가 엔트로피(Entropy)라는 개념을 처음 접한 것은 90년대 말 고등학교 시절. 언어영역 지문에 단골로 등장하는 용어 중 하나가 바로 이 엔트로피였다. 


우주의 에너지 총량은 일정하며(열역학 제1법칙), 엔트로피 총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한다(열역학 제2법칙). 
제 2법칙에 의거하여 유용한 에너지가 손실되는 것이 바로 엔트로피다. 

제레미 리프킨이라는 세계 석학이 17세기 뉴턴의 기계론에서 맞서 정립한 대안적 세계관이라는 건 중요하지 않다. 수학 공식처럼 외웠고 그 이면에 담긴 철학적 도저함과 통찰력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이미 90년대부터 물질 만능주의와 인간중심적 사고방식을 경계하는 목소리가 주효했고 아마 그 이전부터 환경 보호를 촉구하는 논의가 이루어졌을 것이다. 엔트로피도 당대 조류에 조응하여 부상한 문명 비판론 중 하나였다. 

그러나 90년대를 주름잡던 ‘쏘핫’한 엔트로피가 2000년대로 접어들며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 등의 다른 패러다임으로 대체되며 시나브로 종적을 감췄다(실제 데이터가 아닌 순수하게 개인적 느낌적 느낌에 근거함). 면면을 들여다보면 결국 동어 반복일 뿐이지만 시대에 맞게 겉옷만 갈아입었다고 해야 하나. 비록 철 지난 유행가처럼 흘러갔어도 <엔트로피>가 던지는 화두는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할뿐더러 한층 더 절박하게 다가온다. 

얼마 전 어느 다큐를 통해 ‘캐링턴 이벤트(Carrington Event)’를 처음 알게 되었다. 1859년 발생한 사상 최대의 태양폭풍으로 이로 인해 22만 5,000㎞의 전신망이 마비됐다고 알려졌다. 태양폭풍을 처음 발견한 영국 천문학자 리처드 캐링턴(Richard Carrington, 1826 ~ 1875)의 이름을 따 명명했다. 

과학기술 의존도가 극심한 오늘날 태양폭풍이 또 발생할 경우,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피해 규모가 천문학적인 수치에 달할 것으로 예측된다. 지구 종말이 야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으며 발생 주기가 임박했다는 관측 보고가 끊임없이 제기되고 있다. 

이 또한 리프킨이 <엔트로피>에서 누차 역설한 그대로다. 기술이 인간의 생활 방식을 규정하는 것은 물론 기술에 종속되어 무질서가 극도로 팽창된 혼동 속에 갇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과학기술로 쌓아 올린 일상의 편익에 눈이 멀어 실은 누란지위의 아찔한 삶을 연명하고 있지도 모를 일이다.

리프킨의 가르침에 따라, 17세기 뉴턴의 기계론적 우주관에서 탈피해서 인식의 틀을 새로 짜고 상생의 세계관을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하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절체절명의 과제다. 엔트로피 증가를 원천 제거하기란 애당초 불가능하다. 그러니 이를 최대한 지연시켜 자연의 맥박으로 살아가기 위해선 우리 모두가 의식을 개조하고 체질 개선을 해나가는 수밖에 없다. 

실상 전 세계가 저성장 시대로 접어든 현재로선 엔트로피 패러다임은 더 이상 대안이 아닌 자구책이다. 그리고 그 시초는 바로 ‘사랑’이다. 나를 비롯한 모든 생명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태도에서부터 패러다임 혁신이 시작된다. 해서 인공지능, 머신러닝, 블록체인 등 IT 최신 이슈를 다루고 있진 않지만, 과학기술이란 거대 물결에 맞서 어떤 ‘태도’를 갖춰야 할지 수신修身하도록 독려하는 과학 고전 <엔트로피> 일독을 만천하에 강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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