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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중독 코스프레

WMD Book으로 임명합니다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8. 1. 1. 01:48

대량살상수학무기
국내도서
저자 : 캐시 오닐(Cathy O'Neil) / 김정혜역
출판 : 흐름출판 2017.0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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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안이 없으면 문제 제기하지 말라는 식의 태도는 대체로 위험하다. 누구든지 대안이 없어도 얼마든지 문제 제기를 할 권리가 있으며 당장은 뾰족한 대안이 없다 해도 사소한 딴죽에서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얻을 수도 있는 법이다. 대안이라는 자기 검열 프레임을 작동시키는 것은 자유롭게 의견을 개진할 숨통을 끊는 거나 마찬가지다. 독서에도 똑같은 논리를 적용시켜, 저자가 해결책은 제시하지 않고 무책임하게 문제만 구구절절 늘어놓고 있다는 (비판 같지 않은) 비판은 가급적 지양해왔다. 

그런데 이 책만큼은 "그래서 대안이 뭔데?"라는 아니꼬운 시선을 보내지 아니할 수 없다. 인류는 늘 권력과 부를 소유한 지배층과 비지배층으로 양분되는 불평등의 이퀼리브리엄을 유지해왔고 이제 (빅)데이터의 뽐뿌를 받아 한번 피지배층으로 낙인 찍힌 자는 개과천선의 기회조차 없이 영구적인 수탈의 무한 루프에 갇히게 될 거라는 저자의 경고 앞에 이란격석의 무력함만 차오를 뿐이다. 

세상에 공짜가 없는 법이라 내가 디지털 세계에서 누리는 사소한 편익조차 데이터 자진 상납이라는 대가로 차곡차곡 차감된다. 웹상에서 행해지는 내 모든 궤적이 데이터로 치환되고 이는 불완전하고도 불공정한 알고리즘을 거쳐 나의 (창창한) 앞길을 가로막는 치명적인 족쇄가 될 수 있지만 이를 교정할 방법은 요원하다. 

‘넘버스’적인 관점에서 해결책에 접근하자면 데이터가 불평등을 확산하고 부당한 권력의 부당 전횡을 도모하는 도구로 악용되는 걸 막기 위해 투명타당한 WMD 통계 모형 디자인에 힘써야 할 것이다. 그런데 데이터를 소유하는 것도 구글, 페이스북, 애플, 아마존, 마이크로소프트 등 거대 글로벌 플랫폼이고 양껏 긁어모은 데이터를 산출할 통계 알고리즘을 만드는 것도 모두 전 세계 디지털 세계를 쥐락펴락 주무르는 이들이다. 그러니 어디 저 망망대해 어딘가에 버려진 외딴 섬에 가서 혼자 로빈슨 크루소 마냥 非디지털 모드로 자급자족하며 살지 않는 이상, WMD의 포화를 피할 길은 없어 보인다. 

사실 권력과 불평등의 되먹임이라는 저자의 주장이 크게 새로울 것도 없다. 이미 어느 정도는 다 주지하던 사실이라 충격의 정도가 덜할 법도 한데 이렇게 또 한번 무방비 팩폭을 당하고 나면 힘이 좍 빠진다. 나처럼 권력도 없어, 재력도 없어 그저 오로지 착실하게 데이터만 만들어내는 일개 (개털) 데이터리안에게 진실 폭로에는 성공했을지언정 극도의 무력감과 비루함을 다시 한번 톡톡히 일깨워준 이 책을 ‘The World's Most Dangerous Book’이라 명명한다. 




(음....내가 상상했던 모습과 대량으로 괴리되는 저자 look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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