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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중독 코스프레

야망이 횡행하는 대륙 르포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7. 8. 20. 22:15

야망의 시대
국내도서
저자 : 에번 오스노스(Evan Osnos) / 고기탁역
출판 : 열린책들 2015.0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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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후일담에서 ‘진실’을 건진다
개인적으로 후일담의 골격을 갖춘 글 읽기를 별로 선호하지 않는다. 후일담은 무릇 편향적인 시각을 담지하기 마련이며 정제되지 않은 감성팔이 논조가 난무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한 개인의 후일담은 가볍게 치부할 수 있을지 몰라도 한 집단에 귀속된 여럿의 후일담이라면, 그리고 그 묶음에서 일종의 사회학적 패턴을 도출할 수 있다면 이는 유의미한 사유의 대상으로 삼기에 충분하다. 

이 책의 저자 에번 오스노스는 <뉴요커>지의 기자로 활동하며 2008년부터 2013년까지 중국 특파원을 지냈다. 8년 간 중국 본토에 체류하며 격동의 변화가 일렁이는 현대 중국의 면면을 찰찰히 기록했다. 그가 취재를 통해 연을 맺은 인물들 가운데 학문적 고찰 가치가 있다고 여겨지는 일부 증언과 후일담을 엮어 모자이크 작법으로 ‘21세기 중국의 초상’을 핍진하게 복원해냈다. 


‘백조를 집어삼키려는 꿈을 가진 두꺼비’의 혁명
저자에 따르면 작금의 대륙을 가로지르는 거대 물줄기는 ‘야망’이다. 오스노스의 취재망에 걸려든 인간군상은 출신 배경에서부터 직업, 가치관에 이르기까지 언뜻 공통 분모가 부재한 듯 보이지만, 하나 같이 ‘야망’을 좇아 치열하게 변화를 쇄신했던 일국의 혁명분자였다. 이들은 전통적으로 금단의 열매라 여겨졌던 ‘야망’을 대담무쌍하게 집어삼켰다. 현대 중국은 경제 낙후를 극복하고 부를 창출하고자 하는 13억의 야망으로 축조된 사상누각이다. 전광석화처럼 야망으로 층층이 쌓아 올린 고층탑이 다름 아닌 그 야망 때문에 붕괴 위기에 처했다. 

공산당은 일당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 ‘야망’이라는 아편으로 인민을 살찌웠다. 공산당은 범국가적으로 야망을 좇을 명분을 윤허했고 보얗게 살이 오른 인민은 충성심으로 보답했다. 전에 없던 번영을 구가하며 공산당 치하에 귀속된 일원으로서 자부심을 만끽했지만 이제 환각은 서서히 그 기운을 다하고 있다. 신흥 초강대국의 반열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세계 최대 권위주의 국가라는, 도무지 양립 불가능한 명제를 성립시킨 패러독스가 중국의 현주소다. 풍요를 길어 올린 야망도 실은 일당 독재 체제에 복무하는 수단에 지나지 않는다. 체제를 위협하는 야망은 가차없이 응분의 대가를 치러야 했다. 게다가 당의 중앙선전부는 갖은 수단을 다해 압제 통치의 명맥을 따라 인민의 눈과 귀를 주도면밀하게 가려왔다. 

인민을 기만한 치는 비단 공산당만이 아니다. 신흥 부자들로 재편되는 중국식 자본주의 경제 질서 또한 인민에게 기회와 편익을 제공하는 대가로 그들의 신념을 조작했다. 데이트 웹사이트로 부를 축적한 인터넷 기업가 공하이옌은 사랑을 찾는 행위를 자존의 문제로 둔갑시켰고, 스타 영어 강사 리양은 인생의 주도권이 개인에게 있다는 꿈을 팔았다. 고속 경제 발전의 흥취로 들떠 있던 광란의 휘장이 걷히자 극심한 부의 양극화, 환경 파괴, 각종 비리와 부패 권력이라는 절체절명의 난국에 봉착했으며 꿈과 현실 사이의 처절한 간극만이 덩그러니 남았다. 저자의 표현대로 ‘고무적이면서 절망적인’ 혼돈의 용광로 속에서 대륙은 이정표를 잃은 채 표류 중이다. 이제 ‘야망’ 그 너머를 상상해야 할 중대 기로에 서 있다. 



‘탈출’의 수미상관
책의 서두는 전도유망한 군인의 신분으로 타이완을 탈출해서 우국충정의 대의를 실천하기 위해 중국 본토로 전향했던 린정이 대위의 ‘탈출’에서 시작, 맹인 농투성이 출신에서 변호사 자리에까지 이르렀지만 부조리를 공론화했다는 죄목으로 ‘반체제 인사’로 낙인 찍혀 고초에 시달리다가 급기야 위험천만한 미국 망명을 감행했던 천광청의 ‘탈출’로 종결된다. 70년대 탈출 목적지였던 곳이 30년 후 탈출을 종용하는 서슬 퍼런 압제의 철옹성으로 그 본색을 드러냈다. 그럼에도 인민 공화국은 점점 무소불위의 통제력을 상실하고 있다. 제아무리 언론을 장악해서 진실을 은폐한들 일상 깊숙이 삼투하여 파죽지세로 파급력을 높여가는 디지털 장성 앞에선 속수무책이다. 경제 성장과 맞바꾼 정치 개혁을 갈구하는 인민의 열망 또한 날로 증폭되어 간다.


역사 속에서 늘 되풀이되어왔던 것처럼 중국의 지배 권력은 불가항력에 맞서 새로운 통치판을 짜기 위해 갖은 묘수를 총동원할 것이다. 찬란한 경제적 부흥이 도래했던 2000년대 초반을 지나 중반을 향해 전력 질주하는 지금, 피지배 절대 다수층이 직면한 과제는 오직 하나. 이제까지 각자 주린 배를 채운다는 일차 목표를 달성한 셈이라면 이제 타락한 시스템을 정비하고 정신적 공허를 채워나갈 차례다. 각개 인민이 합심하여 이데올로기 교착 상태를 극복하고 인생의 주도권을 가진 자유로운 개인의 삶을 보장받기 위한 방도를 모색해야 한다. 바야흐로 중국을 휩쓸던 ‘야망의 시대’가 저물고 근본적인 체질 개선을 위한 다른 무언가의 시대로 탈출해야 할 시점에 다다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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