티스토리 뷰


아시아의 힘
국내도서
저자 : 조 스터드웰(Joe Studwell) / 김태훈역
출판 : 프롬북스 2016.01.21
상세보기



국사에는 설민석, 아시아-중국에는 조 스테드웰

시쳇말로 영어를 못하는 사람을 두고 ‘영바’라고들 한다. 이 조어법에 따르면 나는 ‘중바’다. 중문과를 나와서도 중국어를 1도 하지 못하는 천하의 애달픈 ‘중바.’ ‘중국어를 못해 슬픈 짐승’이지만 괜스레 중문과 ‘부심’을 부리고 싶은 중생에게 조 스테드웰은 요점만 콕콕 집어주는 마성의 스타 강사로 다가왔다. 어디 가서 중국 좀 안다고 두루뭉술 젠체하고 싶다면, 한 술 더 떠 아시아 전반의 사회경제사도 곁들이며 시간과 장소가 교직하는 좌표 속 중국을 바라보는 거시적 안목까지 탑재했다고 만천하에 티를 내고 싶다면, 조 스터드웰의 <아시아의 힘>이야말로 이 두 가지 욕망에 충실히 부합하는 정본으로 충실히 제몫을 한다. 아시아에서 출발해서 중국에 일시 착륙하는 ‘지적 허영’의 순례를 단기속성으로 다녀오고 싶다면 일말의 주저 없이 이 책을 펴들면 된다.

아시아 경제전문의의 명쾌·상쾌·통쾌한 처방 

저자가 주목하는 지점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같은 출발선상에 있던 아시아 국가들이 반세기가 넘은 지금, 서로 상반된 경제 성장 개발 곡선을 그리게 되었냐는 것이다. 동북아시아의 다수 국가가 괄목할 경제 성장을 이룬 반면, 동남아시아는 여전히 빈곤에 허덕이며 고전을 면치 못하는가 하는 물음에 명쾌하고 단호한 어조로 3가지 해답을 처방한다. 저자의 논리에 따르면, 동북아시아의 경제 성공 전략 뒤에는 어김없이 가족농 중심 토지 개혁, 수출 중심 제조업, 이를 긴밀히 부양하는 금융정책이라는 3가지 정책이 강고히 지탱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 3요소를 공고히 조율하는 정부의 적극적 개입만이 빈국 신세를 면하고 경제적 자립을 이룩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이라고 주장한다. 역사가 이를 여실히 증명하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라 호언하는 저자의 ‘근거 있는 자신감.’ 개진하고자 하는 이론의 합당성을 설득시키기 위한 저자의 노고는 지독하리만큼 세밀하다. 각 요소를 차근차근 짚어나감과 동시에 3요소의 중요성을 재삼 강조해마지 않으니 도돌이표도 이런 도돌이표가 없다 싶다. 쉼 없이 동어반복을 거듭하는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순간, 저자가 성토했던 3대 요소만큼은 강렬히 뇌리에 각인되는 세뇌 효과를 몸소 체험할 수 있으니 이것도 다 저자의 계산된 셈법이 아닌가 하는 의심 반, 감탄 반을 품게 된다. 

저자 들었다 놓았다 다시 들기 

대개 외부자의 관점은 자못 신선하지만 내부자적 감수성 부족과 제한된 정보로 자칫 왜곡되기 십상이다. 이러한 일반론을 반증하는 우수 표본으로서 저자는 그 탁월함을 입증한다. 내부자에 근사한, 어쩌면 내부자에 버금가는 날카로운 분석력과 철저한 고증, 정보를 해석하는 문해력까지 저자라면 응당 갖추어야 할 삼위일체를 이루고 있다. 아시아 근현대사 및 경제 발전 지형도에 달통한 미국의 경제학자가 실증 사례들을 바탕으로 학문적 넓이와 깊이 모두를 확보하는 발군의 필력을 보여준다. 그러나 10점 만점에 10점을 주기에는 어딘가 모자라다. 내부자일수록 낡은 통념과 기성 사고 회로에 매몰되기 쉬우므로 때로는 외부자에게서 번뜩이는 전복적 담론이 생겨나기도 한다. 이런 측면에서 저자는 다소 미흡함을 보인다고 지적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저자의 통찰은 예리하고 정확하지만 참신하진 않다. 이미 국내외 많은 학자들이 농업, 제조업, 금융 본위의 경제 규율 중요성을 역설한 바 있고 개발도상국의 경제 도약을 위한 필수불가결한 요소로서 끊임없이 논의되어 왔던 의제들이다. 구슬이 서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고 다 아는 이야기를 일목 요연하게 묶어 독자들을 설득시키는 것도 비상함이 요구되는 재주라 하겠다. 해서 패턴을 읽고 결론을 도출하는 방법론적인 관점에서 저자가 보여주는 탁월함은 콘텐츠의 진부함을 덮어버릴 만큼 힘이 세다. 

‘아시아의 힘’을 넘어 ‘지금 여기’에 이르기까지 

저자는 동북아시아 경제 성장을 이끈 3요소와 중국을 동일 선상에 두는 비관습적인 목차 구성을 하고 있다. 3요소는 그렇다 치고 엄연히 층위가 다른 중국을 마지막 꼭지로 넣었다는 것이 고개를 갸우뚱하게 하면서도 호기심을 자극한다. 그만큼 중국은 한 꼭지를 차지할 정도로 ‘미친’ 존재감을 뿜어내는 잠룡이며 섣불리 향후 성패를 예단하기 어려운 실험적 공간이다. 중국은 경제 개발 3요소를 충족하며 ‘마이 웨이’ 식의 성장로를 밟아왔지만 공산자본주의라는 특수한 사회정치적 배경 속에서 이해되어야 할 상수와 변수로 뒤범벅되어 있다. 중국은 과연 신흥 패권 세력으로 팍스 시니카의 신화를 일궈낼 것인가, 아니면 통치효율성을 저해하는 압도적인 규모와 사회정치적 병폐를 극복하지 못하고 교착 상태에 머무를 것인가? 이러한 의문은 저자를 비롯한 전 세계인들이 주목하는 뜨거운 감자이자 세계 경제 질서 재편에 막강 변수가 될 관전 포인트다. 불행하게도 남아시아, 중동, 그리고 아프리카와 같은 빈곤국가들이 중국처럼 ‘사다리를 걷어차’려는 신자유의적 처방을 거부할 수 있는 계제는 아니다. 중국은 열강의 압박에도 굴종하지 않는 수적 우세와 강단으로 자국 경제를 지켜냈지만 대다수의 국가들은 이러한 천혜의 보호막마저 부재하다. 어쨌거나 저자는 아시아를 육성했던 경제 개발 방법론이 제 3세계에도 유효하며 이는 역사 속에서 또다시 검증될 것이라고 확신한다. 단순히 분석 보고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지금 여기’를 호출하며 이론의 타당성을 확장시키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실제로 당면한 ‘지금 여기’는 제 3국의 미래가 아니다. 정부 주도 하에 경제 성장의 과업은 달성했지만 그 대가로 치러야 했던 기회비용이 고스란히 축적된 채 썩어 문드러졌고 결국 작금의 정치판의 형태로 곪아 터진 현재다. 박정희 정권의 수출주도형 경제 개발의 터널을 지나 사회 투명성과 시민의식 고양이 시급한 현실을 호출한다. 국가 존립마저 위태로운 현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새로 판을 짜야 할 필요성을 통감하며 구체적으로 이를 어떻게 모색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통렬하고도 실천적 고민을 안겨준다. 

야매 편집자적 비딱선 타기

원제는 <How Asia Works>다. 직역하자면 <아시아는 어떻게 작동하는가> 정도가 될 텐데 <아시아의 힘>이라는 번역 제목이 딱히 원제에 들어맞진 않아 보인다. 동북아시아의 비약적인 성장 동력을 해부하는 저자의 주요 논지만 보아도 그렇다. 저자의 논지를 오롯이 대표한다고는 볼 수 없지만 대표하지 않는다고도 볼 수 없는 아리송한 번역 제목. 인상에 길이 남을 특이한 워딩은 아니지만 간결하고 단정해서 입에 착 붙는 흡착력은 가졌으니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한수였다고 본다. 그럼에도 ‘빌 게이츠가 강력 추천한 책’이라는 홍보 문구가 제목보다 월등한 기여를 한 것 같다는 (삐뚤어진) 생각은 도무지 지울 수가 없다. 아울러 번역은 다소 아쉽다. 이런 인문경제경영 서적을 평소 잘 읽지 않는 개인 독서력을 감안하더라도 상당히 거칠게 읽힌다. 두 번, 세 번을 읽어야 이해가 되는 (내 이해력이 달려서가 절대절대 아닐 거라고 믿고 싶은) 껄끄러운 직역이 군데군데 속출한다. 작가 특유의 문체가 중요한 문학 작품이 아니라면 가독성을 고려한 의역이 더 나았을 텐데 하는 미진함이 남는다.


'활자 중독 코스프레 ' 카테고리의 다른 글

일대일로, 주문을 외워  (0) 2017.08.20
야망이 횡행하는 대륙 르포  (0) 2017.08.20
Burning the Page  (0) 2017.05.07
'명리'로 인생을 내비  (0) 2017.02.04
'성공'을 키운 건 팔할이 운이었다  (0) 2017.02.02
댓글
최근에 올라온 글
«   2024/05   »
1 2 3 4
5 6 7 8 9 10 11
12 13 14 15 16 17 18
19 20 21 22 23 24 25
26 27 28 29 30 31
글 보관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