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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중독 코스프레

일대일로, 주문을 외워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7. 8. 20. 22:18


중국, 그래도 중국
국내도서
저자 : 왕이웨이 / 한민화역
출판 : 서울문화사 2016.0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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빨간 모자가 할머니 댁에 도착했을 때, 문이 열려 있어서 놀랐습니다.
할머니 방으로 들어갔을 때, 모든 것이 너무 이상해서 빨간 모자는 생각했습니다.
'맙소사. 내가 왜 이렇게 무서워하지? 나는 할머니 댁에 있는 것을 좋아하잖아!'
빨간 모자가 말했습니다.
"안녕하세요." 하지만 대답은 듣지 못했습니다.
빨간 모자가 할머니 침대로 다가가서 커튼을 젖혔습니다.
거기에 할머니가 두건을 깊게 눌러쓰고 누워있었고 매우 이상해 보였습니다.
"아, 할머니, 귀가 정말 크시네요!" – "내가 너의 목소리를 더 잘 듣기 위해서란다!" –
"아, 할머니, 눈이 정말 크시네요!" – "내가 너를 더 잘 보기 위해서란다!" –
"아, 할머니, 손이 정말 크시네요!" – "내가 너를 더 잘 잡기 위해서란다!" –
"하지만, 할머니, 무서울 만큼 큰 입을 가지셨네요!" – "내가 너를 더 잘 잡아먹기 위해서란다!" 
늑대가 그것을 말하자마자 침대에서 뛰어나와 그 불쌍한 빨간 모자를 잡아먹었습니다. 
(출처: grimmstories.com )




우리 중국이 달라졌어요


일대일로,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이 천명한 21세기 중국발 초대형 프로젝트. 고대 중국의 영광스러운 유물이자 인류 문명 발전의 마중물이었던 실크로드의 업그레이드 버전. 장구한 역사의 줄기에서 고도로 발달된 문화의 발흥지로 온 세계를 호령하던 중국이었지만 근대화에 처절하게 실패, 치욕으로 얼룩졌던 울분의 20세기를 설욕하고 21세기에는 잃어버린 패권을 되찾겠다는 야심의 칼을 품었다. 야욕의 근원은 2000년대에 들어서 범국가적 호조를 띠기 시작한 중국의 자신감과 맞닿아 있다.


일대일로는 중국의 ‘익스트림 메이크오버’의 확장판이다. 지지부진 지질하던 중국이 삽시간에 달라졌다. 광대한 영토와 머릿수는 역시 만만하게 볼 게 아니다. 후진(이라 여겨졌던) 정치와 미흡한 시스템에도 불구하고 찬란한 경제 성장 가도를 달리는가 하더니 이젠 중국 너머로 대륙의 상상력을 창창하게 뻗쳐나가고 있다. 전 인류의 공리와 번영을 도모하기 위한 전천후 플랫폼으로서 그 선봉에 서서 진두지휘하겠다는 자기실현적 예언. 중국은 연신 주문을 외우며 마수에 걸려들 ‘빙다리 핫바지’들을 탐색한다. 




맏형 코스프레에 심취한 늑대 할머니


저자는 주야장천 일대일로의 ‘선한’ 의도를 읊조리고 그 영혜로운 비전을 설파하지만 난 그저 마이동풍. 제아무리 교언영색과 감언이설로 꼬드긴들 팍스 차이나로 세계를 점령하고픈 속내가 빤히 드러나는 판국에 무슨 낯짝으로 호혜와 공영의 파트너쉽을 운운할 수 있단 말인가? 멀리 볼 것도 없이 최근 한반도 사드 배치에 따른 중국의 (졸렬한) 보복 조치만 보아도 중국이 과연 인자하고 고매한 품격을 갖춘 세계의 ‘따거’가 될 자격이 있냐고 따져 묻지 않을 수 없다.


‘맏형 코스프레’까지는 그렇다 치자. 대관절 왜 중국이 모두가 홍리를 누리는 평화롭고 풍요로운 미래를 창출할 컨트롤 타워가 되어야 하는가? 중국이 강력한 국가 주도의 일당 체제 하에 사회 발전을 이루었다고 해서 세계도 이와 동일한 방식으로 주무릴 수 있다는 망상을 버려야 한다. 중국의 성공은 아직 그 성패를 확언하기 이른 절반의 성공이다. 부정부패, 부의 양극화, 지역 불균형 등 중국은 여전히 해결해야 할 중차대한 당면 과제들을 안고 있다. 자국 문제도 시원스럽게 해결하지 못한 주제에 세계 공동부흥을 씨부리니 거참 황당무계하면서도 범상치 않은 장대한 스케일에 또 한번 대경한다. 




일대일로, 말하는 대로


중국의 일류 장기 중 하나가 바로 반면교사의 청출어람. 앞선 자의 행보를 주도 면밀하게 살피어 과오를 되풀이 하지 않는 것은 물론, 자기만의 방식으로 체화해서 목표 지점에 달성하는 탁월함을 과시한다. 중국이 일대일로 추진에 있어 가장 염두에 두고 분석할 레퍼런스는 아무래도 미국일 터. 20세기를 쥐락펴락하던 일인자의 오지랖은 고스란히 계승하되, 불도저식 ‘깡패질’은 지양한다. 대신 일대일로라는 박애의 가면을 쓰고 시나브로 천하를 발 밑에 두겠다는 고도의 제국주의 전략을 수립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 진실한 포용과 관용을 실천한 정복 국가는 전무했다. 그게 애당초 가능한 태제였다면 인간이 출현한 이래 쉼 없이 계속된 온갖 다툼과 전쟁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단 말인가? 일대일로의 청사진은 일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절대) 없을 것이다. 그런데 또 모르지. 인간은 불완전할지언정 인간의 언어만큼은 찬연한 주술성을 가진 신비의 결정체니 말이다. 15억 중국인이 한마음 한 뜻으로 염원하고 주문을 외운다면 ‘우주의 기운’이 모여 일대일로가 형성될지 또 누가 알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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