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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eauty of hypertext

루이 더 루저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5. 9. 24. 21:16

 

 

 

 

국내에선 듣보일지 몰라도 미국에선 꽤나 끗발 있는 스탠드업 코디미언 루이(Louis) C K 주연의 존웃 티비쇼 <Louie> 본인이 직접 각본과 제작을 하고 연기까지 한다. 일당백 원맨쇼의 원형이라 해도 모자람이 없다. 2010년부터 시작해서 햇수로 여섯 돌을 맞이하는 나름 장수 프로. 에미상에도 여러번 노미네이트되었고 수상 전력도 있다. 금년 에미상에도 어김없이 쟁쟁한 후보들과 경합을 벌였다. (그러나 수상은 제로)

 

극중 주인공 루이는 스탠드업 코미디언으로 밥벌이 하는 40대 이혼남이다. 루이 C. K.의 실제 삶과 거의 일치하는 자전적 캐릭터다. (실제 이름과 극중 이름이 동음이지만 철자는 엄연히 다르다.) 뚱뚱보 대머리의 푼푼한 겉모습과 달리 알길 없는 연민과 동정을 불러일으킨다. 유병재와는 또다른 결의 신종 루저. 유병재가 모성애에 호소하는 지질하고 병약한 루저로 포지셔닝했다면, 루이 C.K.는 그보단 한층 더 마초력이 강화되고 하드코어적인 막나가는 루저로 차별화한다.

 

일상에서는 어리숙하고 어딘가 모자란듯 하지만, 무대 위에서만큼은 살벌하고 신랄한 유머를 표독스럽게 분사하는 극혈 냉소주자다. 천사와 악마가 공존하는 가공할 만한 표정 연기와 성대 모사. 영화 <아이덴티티>를 보는 듯한 다중 인격자의 현현. 인종 차별, 여성 비하, 19금 성적 코드, 신성 모독도 서슴지 않고 이빨 가는 대로 씨부린다. 필터링 하나 되지 않은 위험천만한 저 극단적 사고... 그런데 재미지다!!! 저속한 발언도 분노가 아닌 폭소로 연결시킬 줄 아는 참된 희극인! 그리고 일상에선 이따금씩 얄미워서 쥐어박고 싶은 초등학생 딸의 뒤통수에 대고 뻑큐를 날리는 진솔한(?) 아빠!

 

비급 감성이 대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거두절미 <루이>의 인트로를 실례로 보여주겠다. 그동안 우리 눈에 익숙해진 여느 미드의 세련된 인트로와는 확연히 대비되는 허섭스러움. 루이 루아 유얼 거너 크라이(다이)~~~~ 하는 초싼티 배경음이 깔리면 루이 C. K가 뉴욕 지하철에서 빠져나와 싸구려 피자 일개를 썩션하고 자신이 공연하는 코미디 클럽으로 들어가는 동선을 따라가며 극이 시작된다. 남루한 타이포그래피며 bgm이며 정말 돈 안들이고 발로 만들었다.

 

그러나 이거슨 모두 의도된 연출의 일부이다. 캐릭터 정체성이 쇼의 골수까지 고루 배어 이루어진 완벽한 내적 일관성. 이 1분 남짓한 짤막 영상 안에 <루이>의 정체성이 통째 정제되어 있다. 루이라는 인물의 사회적 계급을 유추할 수 있는 단서를 짚어 보자면, 루이는 뉴욕에 살고 있고 지하철을 이용하는 중하층 서민이다. 대충 걸친 듯한 남루한 옷과 D자 체형, 싸구려 길거리 피자를 섭식하는 걸 보건대 자기 관리에는 그리 철저한 사람은 아니다. 동공이 풀린 듯한 흐릿한 눈빛과 데데해 보이는 몸동작. 인간 상태도 그리 양호하지 않은 게다. 그의 목적지는 자신만큼이나 허름한 코미디 클럽. 돈벌이가 시원찮은 삼류 코미디인거나 이런 데서 여흥을 즐기는 저급 취향의 관객일 것으로 짐작할 수 있다. 비급 감성에 기초한 스테레오타입다발의 허섭스레기 인트로. 철저히 유형화된 단서들을 활용해서 초반부터 확실히 정체성을 각인시킨다.

 

단순히 raw하단 말로는 부족하다. crude, vulgar, cheap이라 쓰고 Louie라 읽는다고 해야 맞겠다. 저렇게 막말하다 길거리에서 총맞는 건 아닐까 우려되기 한다. 그러나 그의 신변은 이상무. 흑인끼리 서로를 뻑킹 니거라고 부르는 것이 욕설이 아닌 유대감의 표시이듯, 같은 언어라도 발화하는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수용 맥락이 달라진다. 루이 C. K.는 흡사 백인처럼 보이지만 미국 주류에서 인정하는 정통(?) WASP가 아니다. 멕시코 이민자 가정 출신이라는 소수자 배경 덕택에 약자를 마음껏 폄훼하고 비방할 수 있는 면죄부를 받았다.

 

대체로 저급하지만 그냥 막 던지는 저급 유머와는 근원이 다르다. 일상에서 우리가 지질하고 비루하게 느끼는 순간들을 포착해서 코미디로 승화한다. 인종 차별, 성 차별, 계급 차별 등 사회 일각에 뿌리박힌 사회 문제들을 끄집어내 냉소를 접목시킨다. 그보다 더욱 시청자를 매료시키는 지점은 바로 40대 남성을 소재로 한 자학 코드다. 육체적으로도 이미 노쇠의 길로 접어들었고 사회적으로도 성공하지 못해 별볼일 없는 데다 앞으로도 대성할 가능성이 희박한 40대 남성의 무력함을 절절하게 표현한다. 발상만으로도 기막힌데 생각한 바를 너무도 자연스럽고 매끄럽게 몸소 재현하고 있으니 이 사람 천재같다.  

 

20분의 적절한 러닝 타임과 큰 줄기 안에서 독립적으로 짜여진 단막 형식. 생각없이 하하호호하고 싶을 때 부담없이 꺼내보기 좋은 미드. 그러나 아름답지 않은(?) 적나라한 영상과 병맛 사이코스러운 하드코어가 거북살스러운 사람에겐 절대 비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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