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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덕후들의 노필터링 만담 열전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5. 7. 10. 20:24

 

 

 

출퇴근할 때 고정으로 듣는 팟캐스트 프로 중 하나인 <필름 정크>. 션, 제이, 프랭크 이렇게 3명이 메인 진행을 맡고 이따금씩 리드가 찬조 출연한다. (얜 그냥 깔끔하게 안 나왔음 좋겠다) 최신 개봉 영화를 중심으로 대화의 저변을 넓혀가며 캐주얼하게 노가리를 까는 게 기본 컨셉이다.

 

뒤에서야 감놔라 배놔라 이죽대는 건 불세출이지만 공적 자리에 나서서 말하는 걸 극렬히 저어하는 나님이기에 대세 따라 팟캐스트를 비롯한 비공식 매체에서라도 이빨 좀 까볼까 하고 진지하게 고민해본 적은 단 한번도 없다. 그럼에도 미친척 한번 팟캐스트를 해본다고 가정했을 때 <필름 정크>는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되는 모델이다.

 

영화 덕후로 사료되는 친구 셋이 모여 영화를 화두로 만담 배틀을 펼친다. 때로는 날선 시선에서 서로를 공격하고 욕설과 19금 야설이 쉼없이 오고간다. 편집도, 검열도 없다. 그러다보니 때로는 3시간이 훌쩍 넘는 장장한 에피소드도 있다. 이렇게 러닝 타임이 늘어지다 보면 얘기가 산으로 가고 듣는 사람 입장에서도 집중력이 슬슬 떨어진다. 그거야 우리네 사정인거고 지네들 목청 쉴 때까지 일단 달려보자는 심산이다.

 

방구와 트림 등 불현듯한 생리 현상 터짐에 거리낌 없는 건 물론이다. 천연스레 남세스러운 것도 모자라 가끔씩은 이것들이 과연 친구들이 맞나 싶을 정도로 정색하며 핏대를 돋우기도 한다. 저러다 누구 하나 빡쳐서 멱살잡을까 싶어 조마조마하지만 금세 또 희희낙락 서로 좋다고 히죽거리고 앉았으니 돌아이는 돌아이를 알아본다.

 

늘 얼척없기만 한 건 아니다. 일례로 매튜 매커너히의 이름을 어떻게 발음했는지를 두고 설왕설래를 벌이다 스펠링 어플에 돌려보는 등 한참을 복닥거리더니 결국엔 공식 석상인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시상자가 어떻게 발음했는지를 듣고 논란을 종결 짓는 작태를 보고 한심하면서도 귀염 터진다는 생각을 누를 수 없었다.

 

하나부터 열까지 지나치게 날것스러워(?) 사람에 따라 얼마든지 듣기 거북할 수 있는 마니아적 프로. 그러나 팟캐스트라는 플랫폼에 가장 충실한 포맷을 지향한다. 나꼼수 출연진들의 과도한 욕설과 수위 높은 발언들을 문제 삼는 것들을 향해 김총수가 날린 일갈은 "꼬우면 듣지 마!"였다. 역시 총수다운 금언! 팟캐스트는 생산자와 수용자의 자유도가 극대화된 유동 플랫폼이다. 편집하기 귀찮아서 안 하는 것도 생산자 마음, 내용이 저질이라 듣지 않는 것도 수용자 마음, 모든 게 내 마음대로라는 플랫폼 생리에 맞게 본인들 하고픈대로 프로그램을 주물댄다.

 

그렇다고 덕후들끼리 농담 따먹기나 하고 앉았다고 우습게 볼 건 절대 아니다. 최장수 프로 중 하나로 꼽히는 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저렴해 보이는 껍데기 안에는 영화 덕심으로 쌓아올린 막강 잉여력, 그리고 나름의 관점에서 텍스트를 해석하는 탁견이 뒷받침되기 때문에 비속과 지성이 절묘하게 어우러진 포지셔닝으로 가늘고 긴 선방을 할 수 있었다.

 

특히 들을 게 마땅찮을 때 멍때리기 스트리밍용으로 손색없다. 어차피 저들도 정식으로 의견을 개진해서 누군가를 납득시키겠다는 게 아니라, 그저 본인들 스스로가 좋아서 지껄이는 것이므로 듣는 이 입장에서도 부담없이 들리면 듣고 안 들리면 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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