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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중독 코스프레

콤마퀸에 금사빠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8. 10. 13. 07:23

뉴욕은 교열 중
국내도서
저자 : 메리 노리스(Mary Norris) / 김영준역
출판 : 마음산책 2018.0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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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에서 발견하자마자 일독을 결심쓰! 

마음산책+뉴욕+교열+출판사 = 필독각

마음산책 컨셉에 꼭 들어맞는 마음산책스러운 책이다. 이 책이 나오고 얼마지않아 '뉴욕타임즈가 기록한 문학 순례'라는 부제로 <작가님, 어디 살아요?>로 출간했다. 뉴욕 베이스 미디어 연작을 펴내는가 싶어 예의주의 중. 

세련되고 독창적인 커버 일러스트로 유명한 <뉴요커>의 아이덴티디를 그대로 재현한 표지. <뉴요커> 최초의 아트 디렉터 Rea Irvin이 남긴 1925년작이다. 모노클로 나비를 관찰하는 대디한 가상의 캐릭터 Eustace Tilley를 선보인 불후의 아이코닉 커버. 이후 Eustace Tilley는 수많은 버전으로 재해석되어 전설처럼 이어지고 있다. 

표지에 이미 마음을 빼앗겼는데, 저자의 이력을 보고 호감 지수 추가 상승, 그리고 몇 장을 채 넘기지 않아 냉소적이면서 덕후스러운 글 솜씨에 반해 콤마퀸과 사랑에 빠졌다(트럼프와 김정은이 사랑에 빠지듯이).

콤마퀸 메리 노리스(Marry Norris)는 1978년부터 <뉴요커>에 몸담아 오면서 책임교열자 및 작가로서 출중한 실력을 인정받았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에 기대어 교열자라고 하면 나이가 지긋하고 성격 예민한 캣 레이디 같은 외주교정자가 떠오른다. 사실 노리스도 그런 전형화된 편견 깃든 이미지에서 크게 다르지 않지만 이 분은 그때 그분들과는 다르게 너무너무너무 사랑스럽다. 

다른 건 다 그렇다 치고 일단 웃기다는 데 큰 점수를 줬다. 굉장히 출판편집자 태가 팍팍 나는 하이엔드(?) 유머를 구사하는데 한번 읽어서는 감이 잘 오지 않아 두세 번 읽고 나야 섬세하게 뱅뱅 꼬아 숨겨두었던 유머가 쓰나미처럼 밀려온다.

실제로 같이 일을 한다면 엄청 피곤할 것 같지만 그럼에도 동료/선배로서 결코 함부로 대할 수 없을, 존경해 마지않을 수 없는 그런 만렙의 내공을 갖춘 절대 프로가 아닐까 억측해본다.  

예전에 일했던 출판사에서 부장님이 하셨던 얘기가 문득 떠올랐는데, 편집자 둘이서 띄어쓰기 하나로 언쟁이 격앙되어 계단에서 머리 끄덩이 잡고 계단에서 싸운 일화가 전설처럼 내려온다고. 그땐 거의 신입이었고 교정교열은 어느 정도까지만 편집자가 잡아내고 마감 임박해서는 외주로 빼서 마무리 짓는 게 익숙하던 때라 그 얘기를 듣고 세상에 별별 희한한 인간 많다며 비아냥 섞인 웃음으로 넘겼었다. 

그러나 연차가 쌓이면서 문장부호 하나로 텍스트의 인상이 좌우될 수 있음을 어슴푸레 깨닫게 되고 보니 그 전설의 주인공들이 머리털 뽑힘 정도로 그친 게 천만다행이었을 것 같기도 하다.  

노리스는 단순한 교열자가 아니라 <뉴요커>에만 있는 독특한 직책인 오케이어의 직함도 맡았다. 기계적 교열 업무를 넘어 편집교정과 팩트체킹 등을 망라해서 인쇄 직전까지 원고를 다듬고 오케이 하는 막중한 책임을 진 편집가데스. 

마퀸이라는 별칭이 괜히 붙은 게 아니다. 교열을 업으로 한다는 것부터 일반인과는 차원이 다른 마이크로 텍스트 감수성을 반드시 내장해야 한다는 필요조건을 함축한다. 구두점 하나에도 몇 시간을 고민하고 오류를 잡기 위해 사사건건 틀렸을 가능성을 사방으로 열어둔 채 의심에 의심을 멈추지 않아야 가능한 일이다. (대체로 숲보다는 풀포기를 뜯어봐야 하는 직업이므로 신경이 쇠약해지는 등 질병에 취약하고 성격이 더러워질 확률이 대단히 높다곤 본다)

이 언니 책만 낸 게 아니라 유튜브도 한다. 2~3분 남짓한 짧은 영상으로 콤마, 세미콜론, 콜론, 대쉬 등 기본적인 영어 구두법을 알려준다. 진짜 이 기획력 기막히게 탁월하지 않나?! 잡지가 사람을 낳고 사람이 책을 낳고 책이 영상을 낳는 이런 연쇄 작용. 

잡지사에서 장기근속 중인 베테랑 교열자(노리스 본인은 카피 라이터라고 본인을 지칭하고 있지만)의 자전 에세이로 그칠 수도 있었을 텐데 이걸 이렇게 유튜브로 확장해서 소셜 미디어로 재가공하는 센스. 

이것도 사실 노리스가 마케팅에 필요한 기본적인 끼를 갖추고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글만 잘 쓸 뿐 외골수처럼 영 숫기가 없거나 했더라면 이런 영상은 언감생심일 뿐. 물 만난 듯이 화면을 장악하는 저 능청스러움에 또 한 번 홀딱 반해버렸다. 



하, 이 언니 뭔가 레트로스러운 복고풍 스타일도 아이로니컬하게 스웩스웩한데 가래 낀 듯 혼탁한 목소리마저 사랑스럽다. 1952년생이니 연배를 생각하면 타의든 자의든 좌우지간 이렇게 자기 이름 걸고 유튜브 방송까지 한다는 건 정말 대단한 일이다. 그래서인지 유튜빙을 하는 본인 스스로가 짐짓 대견한 듯 고무되어 하이퍼된 느낌적 느낌. 에피소드마다 꼭 빼놓지 않고 극세사 개그 욕심을 부리는데 방청석이 있다면 방청객으로 앉아 박장대소 리액션으로 보답하고 싶을 지경이다. 



오하이오 출생 아니랄까 봐 미드웨스트의 촌스러움이 묻어나면서도 호기심과 영민함이 반짝이는 눈빛, 그리고 업에 대한 부심이 만면에 드러나는 저 미소. 프로필 사진을 위한 설정으로 치부하기엔 긍지로 가득 찬 인생사가 빼박으로 캡쳐된 원샷원킬의 찰나. 저렇게 곱게(?) 늙어야지를 되새기게 해준 노리스 옹 더럽!  (연필성애자라더니 과연 책상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는 연필깎이가 시선강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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