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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자 중독 코스프레

A Fine Balance

생산적 잉여니스트 2018. 1. 1. 02:04


매거진 B (Magazine B) (월간) 58호 - Portland (영문)
국내도서
저자 : JOH & Company 편집부
출판 : JOH. 2017.0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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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B>는 창간 초창기부터 팬심을 가지고 예의주시해오던 최애 잡지. 뭘 집어도 ‘믿고 읽을 수 있다’는, 콘텐츠 퀄리티에 대한 무한신뢰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독후감이고 나발이고 순전히 지금 내가 가장 읽고 싶은 호를 선택하기로 결심, 앞뒤 재지 않고 득달같이 주문한 게 바로 2017년 7월에 출간된 58호 <포틀랜드>편이다. 

잡지라고 만만히 봤는데 생각보다 깨알같이 묵직한 내용들로 장식되어 일독하는 데 예상보다 오랜 시간이 소요. 마지막 장을 덮을 때쯤 되니 나도 ‘포틀랜드부심’을 갖고 ‘포틀랜더’로 살고 싶다며 ‘포틀랜드 더럽’을 외치게 되었다. 포틀랜드라는 도시 특유의 바이브가 내가 지향하는 라이프 스타일과 맞닿아 있기도 해서지만 매거진 <B>라는 후광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해서 도대체 왜 나는 매거진 <B>를 좋아하고 신뢰하는가 하는 질문에서부터 출발했다. 잡지는 사양 산업으로 치부되는 올드미디어의 대표격인 인쇄물. 평소 잡지를 즐겨보는 편도 아니고 지식정보 접근성이 높은 요즘 같은 시대에 누가 아직도 잡지를 보냐며 잡지를 싸잡아 조소(?)하던 이중 하나였다.

출판업이 ‘단군 이래 최대 불황’이라 사람들이 책도 안 사는 마당에 잡지라고 별수 있겠는가. 더군다나 잡지는 트렌디한 ‘알쓸신잡’ 제공이 잡지가 내세우는 주된 소구점인데 실시간으로 영상 정보가 공유되는 디지털 시대에 살아남을 뾰족한 재간이 없어 보였다. 일반 단행본이라고 딱히 사정이 다르지는 않다. 활자매체의 종말을 점치는 극단적인 견해도 있지만 향후 종이책은 소수 고급 취향을 위한 기호품으로 복무하며 나름대로의 그 명맥을 이어갈 것이라는 게 중론이다. 

그런 면에서 매거진 <B>는 단연 선견지명의 잡지다. 일회성 정보가 범람하고 소비 주기가 단축되는 디지털 생태계에서 종이잡지는 소장가치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책의 물성을 극대화시켜 심미안적 욕구를 충족하고 단발성이 아닌 지속가능한 정보를 제공한다면 얼마든지 독자를 확보할 수 있다는 걸 매거진 <B>가 몸소 입증하고 있다. 

편집으로 보자면 잡지 문법을 따르지만 잡지의 탈을 쓴 일반 단행본에 가깝다. 권마다 독립성을 가지고 시간이 흘러도 쉽게 바래지 않을, 까다롭게 선별된 브랜드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세련된 디자인에 돈 좀 들인 듯한 종이 재질. 슥 한번 훑고 버리는 소모품처럼 인식되는 일반 잡지와 달리, 한 달에 만 얼마를 들여 한 권 쟁여놓아도 별로 후회하지 않을 만큼의 값어치는 톡톡히 한다. 

단순히 종이책만 잘 만들어서 되는 건 또 아니다. 세칭 뉴미디어라 하는 디지털 플랫폼으로까지 운신의폭을 넓혀야 살아남을 수 있는 게 요즘 디지털 판도. 매거진 <B>는 이 지점에서도 발군의 생존력을 보여준다. 동명의 팟캐스트로 소통 접점을 늘리고 유튜브로는 해당 브랜드의 영상을 올려 종이잡지와의 시너지를 배가하는 등 종이책과 뉴미디어의 투톱 전략을 절묘하게 구사한다. 

매거진 <B>가 강조하는 두 가지 키워드는 Brand와 Balance다. 한국판 <모노클>인가 싶다가도 과하게 힘을 주지 않은 듯한 고상함. 적당히 고급스러우면서 대중적 취향에도 별 부담이 없다. 말랑말랑 감성에 어필하면서도 적당한 무게의 콘텐츠로 통찰을 던져준다. 아날로그와 디지털 사이에서 탁월한 평형감각을 선보이며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를 포섭하는 적응력은 가공할 만하다. 

매거진 <B>의 수장은 익히 알려진 대로 네이버 디자인과 마케팅을 총괄하며 인터넷 사업의 혁혁한 공을 인정받았던 조수용 대표. IT 최전방에 몸담았던 업계 최고 전문가가 시대를 역행하는 것도 아니고 난데없이 종이잡지를 들고 나온 데에는 다 그럴만한 이유와 전략이 있었던 것이다. 매거진 <B>는 분명 이전까지 국내에서 볼 수 없었던 혁신성을 띠고 있다. 

어쩌면 뉴미디어를 통한 혁신이란 특출 난 전복이 아니라 정제된 균형에서 비롯되는 것일지 모른다. 매거진 <B>가 엄선한 브랜드는 하나 같이 균형 잡힌 방향성과 마케팅으로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구축해왔고, 이를 풀어내는 방식 또한 매끄럽고 근사하다. 기성문화코드를 비틀더라도 균형미를 갖추는 기교야말로 매거진 <B>가 자랑하는 전매특허이자 레드오션 잡지계에서 선방해 온 비책이다. 

균형 잡힌 브랜드를 다루는 균형 잡힌 잡지. 광고 없는 잡지를 표방하며 자주적이면서도 독창적인 관점을 견지, 균형 하나로 완벽한 내적 일관성을 길어냈다. 이것이 바로 창간한 지 햇수로 7년이 되는 매거진 <B>가 이제는 초심을 잃었다느니, 힘이 빠졌다느니 하는 세간의 부정적인 평가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주목해야 할 이유이며, 올드미디어와 뉴미디어 사이에서 갈팡질팡 길을 잃은 모두가 배워야 할 지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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